글과 삶

노령근해

guem56 2013. 3. 18. 16:52

신사임당이 대관령 마루에 올라

발아래 푸른 바다와 아득한 강릉 땅을 보면서

지었다는 시가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강릉가는 여정은

경원선을 타고 원산으로 가서

원산에서 배를 타고 동해연안으로 흘러내려

강릉에 닿았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1950,60년대 강릉에서 서울을 가자면

트럭을 개조한 버스를 탔는데

컴컴한 새벽에 집을 나가면

서울은 밤듕에 도착했다고 한다

 

메밀꽃 필무렵의 봉평은

현재 평창에 있고

진부가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경유지라면

도로에서 살짝 비켜 있다

 

물레방아가 설치된 입구에서

효석의 생가는 멀지 않다

 

2000년 전에는 동네 사람 말고는 효석의 생가가 어딘지 몰랐고

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은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주민이 살고 있는 효석의 생가를 마당까지 둘러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옛날 효석은 어떻게 서울을 갔을까

그가 스스로 가난뱅이라고 여겼듯이

생가의 한옥은 반듯하나

규모로 보아

저런 곳에서 난 시골 청년이 서울가서 살기에는

참 힘들었을거라 짐작이 간다

 

<노령근해>

거리에 최류탄 냄새가 자욱하던 80,90년대엔 금지된 소설이다

 

지금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고

단숨에 읽을만한 짧은 소설이다

 

스토리 전개나

인물사이의 갈등

 

또는 기승전결의 구조는 별로 없고

묘사와 서술이다

 

커다란 배를 타고 두만강하구를 거쳐 러시아연안으로 가는

조선청년의 눈에 비친 여객선 풍경이

노령근해의 전체다

 

노령근해를 보면서

뜬금없이 오래전에 읽었던

줄거리조차 별로 기억이 별로 안나는

조세프 콘래드의 <Heart of Darkness>를 생각했다

 

<노령근해>는

원근법에 의해 그린 그림이라기 보다는

이중초점 혹은 다초점에 의한 서술이다

 

내 생각엔

플롯이 미숙하다거나

선실위의 양과 기관실의 음을 대조하여

어설픈 경향성을 띠었다고 보기 보단

 

소설이 나온 시기를 고려하면

잘 쓴 글이란 생각이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백석이 러시아어를 잘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노령근해를 보면서

하르빈에 가서 커피를 마셨던 효석도

러시아글을 읽었으리라 본다

 

노령근해를 보면 효석이 오늘날 블라디보스톡이나

근처 러시아 항구로 갔을 큰 배를 탔을거 같다

 

연해주는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대가 베이징에 진주하고 나서

러시아가 청나라에 중재를 해준 댓가로 청에서 얻은 땅이다

 

이순신장군이 젊은 시절

여진족과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지켰던 녹둔도는 아마도 러시아 땅으로 된거 같다

노령근해는 이 지역과 가깝다

 

영화 베를린에서

하정우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간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톡은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거쳐갔고 지금도 살고 있다

 

흔히 효석의 글은 체호프와 비슷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병이 걸려 죽은 사실도 비슷하다

 

1860년생  체호프는 직업이 의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할린 섬까지 여행을 와서

여행기를 남겼고 그 내용엔 힘들게 살아가는 조선인의 모습도 나온다고 한다

 

이래저래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로 이어지는 러시아

큰 글들의 광맥을 건성으로 돌아보더라도

 

아무래도 러시아 글을 익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짦은데 할 일은 많다

옷은 사두면 입게 되고

책은 서가에 입주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살피게 된다

 

책장엔 열권의 러시아책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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