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주돈이 애련설

guem56 2013. 5. 1. 15:54

북송의 주돈이(1017~1073)는 연을 사랑하여 애련설을 지었다

이글은 고문진보에 수록되어 많은 사람들이 두고 두고 읽었다

연꽃을 화중군자라 하여 높이 기렸다

 

중국 강서성 간저우시에 속한

다위(大余)현에 주옥촌(周屋村)이라는 마을은

주씨 집성촌이다.

여기 주돈이를 뫼신 사당이 있다

 

당나라때 장구령이

강서성에서 남쪽 광동성 경계에 있는 대유령 산맥을 넘는 고개를 길을 넓혔다.

 

이를 매관(梅關)이라 하며

천년 넘는 세월 숱한 차상과 비단 장사

그리고 숱한 백성들이 오고간 흔적이 남아있다

 

양귀비가 여지를 좋아해서 남쪽에서 생산된 여지가

달리는 말에 실려 이고개를 넘었고

소동파가 혜주로 귀양갈 때 역시 이 고개를 넘었다

 

삼국지에 보면

오나라 손권의 책사겸 군전략가인 주유가 등장하는데

주유가 바로 주돈이의 선조이며

 

현대에 와서

아큐정전의 노신(본명 주수인)과 저우언라이가 같은 주씨라 한다

 

간저우 대위현에 주씨들은

객가인으로

당나라 황소의 난과 몽골이 남송을 압박할 때 이주했다

 

주돈이는 송나라 이학을 발전시킨

정호 정이 형제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정호 정이 형제는

소식 소철 형제와 정치와 학문에서 대립각을 세웠으며

왕안석의 개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는데,

 

북송 왕안석 개혁시대를 이해하려면

식 형제와 대립했던 정호형제의 사상뿐 아니라

정치적 역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씨 소씨의 두 형제  네 사람이 살았던 때에

고려의 대각국사가 바다를 건너가

항저우 서호 근처에서 부지런히 불경을 모아 고려대장경의 자료를 마련했다.

 

북송시대의 정쟁과 유학의 갈래 그리고 문학의 흐름은 고려 조선에 영향을 끼쳤는데 이를 복합적으로 한눈에 조망하려면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니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누가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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