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레미제라블

guem56 2013. 5. 14. 18:03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춥던 겨울

영화 레미제라블이 찾아왔다

 

관객이 예상외로 많다는 인터넷 미터기를

재삼 확인하고 러셀 크로우를 보러 갔다

 

 오래전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다가

잠 들었던 때 이후로

뮤지컬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글레디에이터에서 힘을 보여준

러셀 크로우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베르 형사역을 어떻게 소화하나 그게 궁금했고

 

장발장 스토리를 좀더 알고 싶어서

그리고 이 영화속에 파리시내 하수도는 어떻게 보여주나

 

그런 저런 이유로 영화관을 찾았고

긴시간 내내 영화에 깊이 몰입하였다

 

금은산 자락에

황새가 눈사태로 날아앉던 옛날

 

앉은뱅이 책상이라

방바닥에서

장발장을 보다가

빵하나 훔친 죄로 그렇게 오래 징역을 살았다는 장발장을

왜 그렇게 경찰은 쫓아다니는지 어린 나이에 짐작이 안갔다

 

불쌍한 코제트는 과연 어디가서 살아날지 어두운 구름이 잔뜩 덮혔을 때

매화산 자락 시골마을의 거의 모든 도서가 그렇듯이 책은 뒤가 끊겨 있었다

 

동샛골 동춘이가 빌려갔을 때

그 할아버님이 뒷장으로 봉담배를 말아 태우셨는지도 모른다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오는 길목에서 기다린다던

산울림 형제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는데

아직 장발장을 읽지 못했다

 

그만큼 내 삶도 고단했고

그래서 더 우울한 그림의 이 책은

못 읽고 지구를 떠나는 걸로 나는 가계약을 했었는데

 

영화 첫장면에 거대한 배를 끌어들이며 죄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환청이 되어 며칠을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서울 이태원 근처에서

공연한다는 극장판 뮤지컬을 보러 갔다

 

거기서도 어린 아이 가브로슈는 총에 맞아 죽었고

에포닌은 슬프게 거리를 걸었다

 

자베르는 자살을 택했고

늙은 장발장은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죽어갔다

 

무대위의 배우들은 엄청난 박수에 휩싸여 밝게 웃으며 나갔으나

어떤 관객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거리로 나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서 서늘해지면

올해는 아니라도 언젠가 레미제라블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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