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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 스카이(원세개)

guem56 2015. 12. 11. 10:43

 

위안 스카이(원세개)

 

1916년 중국내 군대의 실권을 갖고 있던

위안 스카이가 갑자기 병사했다

 

1970년대 단일 국정교과서로 배울 때

중학교 국사책에는 위안 스카이의 흑백사진이 들어있었다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고

조선의 국익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인물이었다는 것 외에

더 이상 그의 공과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오늘날도 같은 한국인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스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려 했던 명성황후로

어떤 사람에겐 무능하고 욕심많은 민비로 불리는

 

며느리 왕비는 황급히 서울을 도망쳐 떠나고

대원군은 실권을 잡게 된다

 

이때 청나라 무장병력이 들어와

대원군을 납치하여 배에 태워 텐진으로 압송했다

 

4년후 대원군은 조선내 친일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귀환하게 되는데

압송과 귀환의 배후엔 위안 스카이가 있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동학군은 위세에 눌린 조선정부는 청군과 일군을

동시에 불러들이는 우를 범한다

 

청일전쟁이 발생하고

청나라의 패배로 청나라 세력은 조선에서 물러나며 위안스카이도

후퇴하는 병력과 함께 조선을 떠난다

 

위안 스카이는 조선에서 10여년 이상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날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위안 스카이의 일생을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중국 하남성 샹청(項城)시에 원씨의 집성마을이 있다

 

원갑삼은 원세개의 종숙조 할아버지다

중국에선 안휘성 강소 하남 산동 일대에 농민 봉기군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이들은 같은 시기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태평군과 함께 섞이기도 했다

이런 봉기군을 염군(捻軍)이라 하는데 1853~1868년의 긴 기간에 여러 곳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청나라 군대는 염군을 막느라 허둥댔다

 

원갑삼은 염군진압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그 공으로 흠차대신의 위치에 올랐다

 

원갑삼의 형이 되는 원수삼의 아들이 원보중이다

 

1859년 원세개는 원보중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먹기를 잘해 늘 젖이 모자랐는데

숙모 우씨가 젖을 먹여 키웠고 아들이 없던 터라

숙부 원보경의 대를 잊도록 친부 원보중이 배려하였다

 

원보경은 아들이 된 원세개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고

나중에 원세개의 후원자 노릇을 하는 오장경과 돈독한 우의를 쌓았다

 

놀기 좋아하여 유람을 즐기던

원세개는 나름 독서와 세상 보는 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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