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영시암의 비석

guem56 2010. 6. 10. 13:28

 인제 원통을 지나

용대리 설악산 백담사로 가는 길은

매표소에서 10리 길이 넘고 이길을 걷다 보면

맑은 계곡물 보는 재미에 즐겁기도 하지만

 

설악산 대청봉이나 봉정암 까지 오르고자 하는 사람에겐 오랜 걸음에 진이 빠지기도 한다

요즘은 미니 버스가 부지런히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왕래하며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백담사에서 올라가면 영시암이 있다

 

 지금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 큰 절집의 모양이다. 오세암이나 봉정암을 찾는 불자들이 전국에서 오시는가 보다

삼십여년 전 영시암터에서 한참 가다 보면 마등령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오세암에 아직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 영시암은 터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덩그러니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최승순이란 한학에 밝은 선생님께 수업을 배웠고 이 분이 강의도중에 영시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셨다.

삼연 김창흡 선생의 학문은 깊고 깊으며..운운..

삼연선생 부친 문곡 김수항이 정쟁에 휘말려 사사된 후 세상을 결별한다는 뜻으로 설악산에 들어와서 암자를 지었고 그 영시암에서 호랑이에게 같이 있던 사람이 잡혀먹혀서 설악산을 나왔다는 그런 말씀이셨다...

 

  김창흡의 아우인 포음 김창즙(金昌緝)문집에 동유기(東游記)란 기행문이 있다.

김창즙이 임진년(1712) 8월에 집(서울인지?)을 떠나 금강산을 보고 동해쪽 남으로 내려와 설악산을 지나며 형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김창즙은 출발 열흘 쯤 지난 9월 초에 금강산 만폭동 근처에서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이란 양사언의 글씨를 감상하고 다시 보름이 지나 9월 15일 설악산 심원사로 찾아든다. 아마 심원사가 현재 백담사의 옛날 이름인 듯 하다. 영시암에서 형을 만나 밤새 즐겁게 환담했다고 적고 있다.

....종론해산지승 불각야지심야(縱論海山之勝不覺夜之深也 산과 바다의 경치를 논하다 보니 밤이 깊은 줄 몰랐다)

 

 

 실학자로 잘 알려진 홍대용을 가르친 스승이 미호 김원행(1702-1772)이다

김원행의 할아버지가 신임사화로 사사된 영의정 몽와 김창집이며 삼연은 그 아우이다

미호집에 영시암유허비문이 실려있다

 

 삼연 선생이 별세한지 27년후라 했으니 아마 1749년이나 1750년 쯤이다. 당시 인제군수 이의광이 삼연의 학행을 흠모하여 영시암에 유허비를 세웠고 그 글을 삼연의 종손(從孫)인 김원행이 지은 것이다.

 

  기사년의 큰 화를 만나서 세상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 영원히 은거할 것을 결심하고 영시암을 지었는데 6년쯤 지나 호환을 만나 같이 있던 사람이 죽어서 삼연선생은 춘천의 곡운(오늘날 강원도 화천군)으로 떠났으며 그 뒤 영시암은 퇴락하여 무너졌다는 내용이다.

 

 이 유허비는 오늘날 어디 있는지 사라졌는지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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