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혜초 왕오천축국전....

guem56 2010. 7. 2. 19:09

프랑스 사람 뽈 펠리오가 20세기 초

둔황 막고굴에 들려 수많은 문서를 프랑스로 가져갔는데

 

거기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들어 있고

그 귀한 필사물이 올해 말 서울에 들어와 전시된다고 한다

 

막고굴의 유물은 일본사람 오타니 고즈이도 많이 가져갔는데

이 유물이 지금의 서울 중앙 박물관에 있고 중국은 이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막고굴의 벽화나 여러 불교 유적은 4세기부터 14세기 까지 1천년동안

세월을 두고 만들어진 것인데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크게 규모가 늘어났다고 한다...

 

측천무후(625-705)가 80여수를 누리고 죽을 무렵에 신라승 혜초(704-787)는 태어났고 혜초의 입적자리는 산시성 우타이산이다...이 산의 이름에서 평창의 오대산이 나온듯도 하다

 

낙빈왕(駱賓王)이란 당나라 시인이 있다

성미가 걸걸한 그는 측천무후의 권력에 반기를 든 서경업군대에 투신해 측천무후 타도 격문을 지엇고 ..명문인 이 문장은 고문관지에 수록되어

 

대대로 읽힌다

서경업의 군대가 패퇴한 후 그는 강호에서 종적을 감추었으며

그의 격문을 본 측천무후는 문장의 장쾌함에 감동하였다 하니 여걸은 여걸이다

 

이 여자가 실은 백제 고구려 망국의 배후에 있다

 

전하는 이야기론 낙빈왕은

서호로 유명한 항조우의 영은사에 승려로 있었다 한다....

 

서경업의 10만군대가 일어난 시기는 680년대로서 이미 고구려는 망한 때이고

측무후는 그후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서역을 개척하면서 막고굴에 요즘말로 하면

크게 문화사업을 펼쳤고

 

그리고 신라는 고구려 백제가 없어진 뒤에...나름대로 국력이 커져서인지

숱한 유학생과 승려가 해외로 떠났고 그중 한 사람이 혜초이다

 

그러나 저러나

고구려가 사라진 것이 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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