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청춘불패 유치리의 닭..........

guem56 2010. 7. 9. 19:15

그 옛날 달걀이 귀하던 시절

유치리 아래 시동에 시동장이 서면

난터골부터 느르치 가두둑

 

숱한 골짜기 사람들이

콩이며 옥수수며 닭이며

이고 지고 손에 들고 장으로 내려왔었다

 

난장에는 볕집으로 삼은 달걀꾸러미 담는게 있었으니

배나 신발처럼 길쭉하게 생긴 달걀 집에는 알이 10개 들어있었다

 

그것이 가장 흔한 시동장의 현금교환매물이었다

 

계란이란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많은 가축들이 살았다

 

소는 두마리 돼지와 개가 한마리씩

 

그리고 닭들이 10수 내외였다

마치 지금 아이들 촌의 닭장처럼

붉은 벼슬 까만 꽁지

 

장닭이 천천히 위엄있는 걸음을 하고

노랗거나 불그죽죽한 암탉들이 뒤를 맴돌았다

 

닭은 올챙이를 잘 먹었다

배추잎이나 풀잎으로 살다가

봄철 닭장 안에 올챙이를 잡아다 풀어놓으면 난리가 났으나

올챙이를 늘 잡아 줄 수는 없고

어쩌다 재미로 잡은 올챙이들을 가져다 준 것이었다

 

닭장안에는 역시 짚으로 짠 닭이 알낳는 커다란 볕짚 주머니가

하늘에 매달려 있었고

늘 달걀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입이 짧은 나는 달걀을 먹지 못했다

팔다리가 가늘고 얼굴이 하애서

빈혈기가 감도는 나를 보고

 

동네 어른들은 달걀을 먹이라고 했으나

집에서 수시로 나오는 그 알을 삶아도 프라이해도

비위가 드놔서 먹지를 못했으니

어느날은 화롯불에 할머니가 구워주셔보기도 했으나...

 

내가 달걀을 먹은 것은

유치리를 떠나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이었고

 

그때는 다시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으니

지금도 달걀을 보면

닭이 홰를 치는 그 옛날이 생각이 난다

 

푸른 바다 동해

고성에 사시는 고모네와

서울 사시는 고모네가

더운 여름날 수박을 사들고 동네 합승을 타고 오시는 날

 

그날 아침부터 할아버지는 닭을 잡으셔서

숯돌에 칼을 씼으시고

피를 흘리며 모로 누운 닭이 마당 한켠에 있을 때

 

그런거 보면 안좋다고 야단을 치셨다

닭은 더운 물에 삶아지고 그 비릿한 내음이 마당에 흐르고 나서

어느덧 별이 뜨는 밤이 오면

닭고기가 밥상위에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먹는 것도 변해서

마당 한 켠에 키우던 닭을 잡아 음식을 만들던

그 느림과 기다림의  시대는 영영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