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구월의 길목에 접어들면
유치리는 조용하다
누런 들판에
메뚜기가 벼포기에 엎혀있고
하늘엔 참새가 날아든다
여기저기 허수아비가 설 무렵
더위가 물러갈 때
어느 순간 동네 전체가 싸늘해 지는 기억이 있다
무슨 말인지 그 뜻을 몰랐는데
술조사가 나온 것이다
20리 아래 양덕원 면에서
나온 사람이 집집을 뒤지며
밀주 단속을 한다
아마 이 시절이 쌀이 귀한 때라
국법이 가양주를 금하여
집에 담근 술이 있나 조사하는 것이라...........
시동하며 유치리엔 소주 마시는 법이 드물었다
그만큼 소주는 비싼 술이고 양조장 막걸리도 버거워
집에서 담궈 먹는 것이다..........
매산학교 오른켠 담을 타고 오솔길을 오르는 동네가
지거치이고 그 언덕 위에 외갖집이 있었다
625때 인민군이 소대급인지 중대급인지 막사로 썼다고 전하는
외가집은 안채가 넓고
집으로 들어가는 마당이며 앞뜰이 길었다
작고 급한 오솔길을 올라
숨이 턱에 닿을 즈음
누런 황소 두마리가 아람드리 나무에 매여있고
그 나무 한켠에는 사시사철 물이 솟았으며
그 샘물은 시원했고
그 물을 길어 밥을 했으며
그 물로 일년 내내 막걸리가 떨어지질 않았다
술조사가 나오면 동네 여러 집에서 술독이 걸렸으나
외가집 술은 아무도 몰랐다
외할어버지께서 동네 인근 십리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셔서
세배객이 정월 보름까지 이어지는 집이었으니
술조사 하는 사람이 애써 뒤지기도 버거웠거니와
소를 맨 우물가 아람드리 나무 위에 한가지가 텅 버었으며
작은 외삼촌은 거기다 술독을 얹어놓았다고 늘 말씀 하셨으되
아마 그건 아닌거 같고
외가집 뒤켠 이끼가 수십년 묵은 돌담아래엔 항아리며 쟁기며 만물상이라
그 곳에 술독을 두면 하루 종일 찾으면 모를까?
아마 그냥 갔을 것이다
외가집엔 사람들이 스무명은 넘게 살았다
더운 여름 어른이며 아이며 술밥을 먹었다
달달하고 시원한 그 막걸리에 밥을 말아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술에 취하지 않았다
그냥 마시면 술이 되고
밥을 말면 국이 되는 그 달달한 술을
다시 마시진 못할거 같다
아스파탐이 첨가제로 기록된 플라스틱 병안의
생막걸리를 마시며
그 오래 전 세월로 늘 떠나본다
외가는 세월에 흔적없어지고
우물샘 앞 넓은 밭은 군의 사격장이 된지가 꽤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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