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대통령 선거의 추억(어느 해 봄날)

guem56 2010. 11. 10. 14:38

 춘천의 봄은 화사하다

겨울이 춥고 길어서 더욱 그렇다

 

짧으나 따스한 봄날 개나리가 노랗다

1971년 봄

약사리 고개와 육림극장 근처에 있는

봉의초등학교 교정에도 개나리가 필 즈음인지

 

어느날 숙제를 산더미 같이 내주시는 백선생님이

수업을 일찍 마치시고 그날 따라 숙제가 없었다

 

대낮에 숙제도 없이

별 이유도 없이 집으로 가란 소식을 듣고

교문을 나와 새로 지은 육교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주로 아저씨들이 꽤 많았다

 

그분들은 전부 약사리 고개 쪽으로 감아돌아

한결같이 어딘가 부리나케 가시는 길이라

 

어린 나이에 뭔가 있구나 해서...

길 잊어먹을까 두리번 거리며 어른들을 따라 갔다

 

고개 넘고 길을 건너

어느 커다란 운동장이 발치 아래 보였다

 

초등학교 운동장과는 비교가 안되게 큰 마당에

상석은 비를 피할수 있게 지붕도 있고

커다란 마이크 소리가 들렸고

 

바닥에 앉은 숱한 어른들이 계셨다

도포자락 휘날리는 노인부터 아저씨들 천국이었다

 

저 멀리 가물가물한 연단에

누군가 들어서서 연설을 하는데

 

이 도선 올씨다...

39년전 그 분의 달변이 아직도 귀에 남아 그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마 그 분은 당시 박정희후보의 연설 전에 미리 선수연설을 하는 모양이었다

 

6학년 어린 나이에 무슨 말씀인지 알 바는 없고

....예비군은 나라를 지키며....우리 공화당은......

어떤 재미있는 농담을 하여 그 내용을 몇 년 전까지도 알았었는데

이제는 잊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호남 출신의 이도선 전민주공화당 국회위원은 아직도 생존해 계시다>

 

이도선 씨의 연설이 재미있는지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더욱 모여들었다

 

잠시후 한참 웅성웅성하더니

멀리서 키가 작은 분이 올라오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탁음이라 아까보다 또렷이 들을 수가 없었고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어

시야가 가렸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서

키작은 나에겐 소리와 시야가 다 가렸다

 

가까이 가볼까도 했으나 웬지 겁이 났다

나는 연단을 최대한 바라보며

슬금슬금 빠져 나와서

기운을 내고 방향을 더듬어서 간신히 집으로 갔다

 

그것이 내가 대통령 박정희를

멀리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여야가 뭔지 몰랐고 김대중후보가 출마했는지

그 이름도 몰랐다

 

다만 그 해 춘천에 야당후보는 유세을 안했었는지 나중에 했었는지

잘 몰랐었고 춘천은 북한인접지역이라 그랬는지

거기 모인 사람들은 박정희후보를 지지해서 열기가 많았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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