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육림극장 1974년 가을

guem56 2010. 12. 14. 12:32

그 해 여름은 몹시 더웠고

사람들은 많이 눈물을 흘렸다

 

목백합 뱃지를 달고 하얀 깃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도청앞 분향소에서

 

총탄에 서거한 학같은 영부인 영전에 곡을 하던 여름이 지나고

소양강 다리건너

소양중학교 운동장에는 체력장 연습이 한창이었다

 

어차피 누구나 다 만점 20점을 맞을텐데 뭐하러 이래 땀을 흘리나

투덜대면서 힘겹게 힘겹게 매달려 턱걸이 연습하고 달리기 하던 끝에

진짜 체력검정을 하는 날이 와서

 

시내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침부터 모여 일정을 끝내고 서너시도 안되어

그날은 해방되었다

 

뒤도 안돌아보고 휭하니 내달린 곳이 약사리 고개 넘어 육림극장이다

 

영화는 빠삐용이었다

영화를 보러 들어갈때도 빠삐용이 뭐하는 영화인지

어떤 내용인지 어떤 배우인지

중3 촌뜨기가 어찌 알겠는가?

 

예전엔 영화상영중에도 아무나 들어갔고

기억으론 아저씨들은 극장안에서 담배를 피우시며 느긋하게 영화를 보셨다

 

캄캄한 화면에 처음 나온 장면이

스티브 맥퀸이 감옥을 초장에 탈출하여 나병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건네준 담배인지 그걸 피는 장면이라

 

어두운 화면에 음산한 모습

그리고 정면으로 보기 힘든 얼굴이 얽은 사람들이

빠삐용을 사람테스트 하는지 건네주는 담배

 

저걸 피어야 하는 장면

겁이 나고 오금이 얼던 순간이었다

 

아직 영화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져

나중에 수도원에서 수녀원장이 빠삐용을 왜 신고하는지도 잘 몰랐고

 

맨 나중에 악마섬에서 드가는 남고 빠삐용은 다시 바다에 왜 떨어지는지

그 의미도 잘 몰랐다

 

다만  이 영화는 수십년 세월동안 머리에 맴돌고

또 텔레비젼 명화극장에서 다시 보아서 줄거리도 환히 알게 되고

그 영화의 모태가 된다는 베네주엘라의 어느 죄수 이야기도 읽은 적이 있다

 

세월은 흘렀고

육림극장도 간판을 내렸으며

한때 사람들이 붐비던 극장앞 중앙시장 넘어가는 골목도 인적이 드물다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 종종걸음으로

춘천의 거리를 걸어 갈때면

뜬금없이 빠삐용을 보러 숨이 턱에 닿아 바쁘게 가던 그 때가

어제처럼 또렷이 생각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