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피스코, 평화봉사단 <trente-neuf>

guem56 2011. 3. 10. 17:34

유치리에서 가두둑을 거쳐 상창으로 가면

아스팔트 냄새가 매캐한 버스길이 나오고 헌병이 흰장갑을 낀 채

낮이나 밤이나 서있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한참 가면 홍천읍이다

내가 난생 처음 홍천읍을 가보고 느낀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낯설고 물설고 감동적이다만

 

거기서 중학교를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십여년이 지난 오늘도

보령상회가 여전히 호국사에서 홍천중학교로 가는 길가에 있었다

 

진창길을 건너 중학교에 가면

학교가 언덕 위라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했다

 

홍천중학교엔 야구부가 있었고 현 LG박감독이 홍천중을 다녔다

야구부원들은 아침마다 그 가파른 경사를 달음박질로 숨이 턱에 달아 올랐다

농고와 같은 운동장을 쓰던 때라 학교안엔 토끼인지 닭인지 가축의 냄새도 있는 듯 했고

퇴비로 쓰는 거름과 농기구 여러 식물이 공생하고 있었다

 

교실앞에 낡은 민가가 있었고 거긴 매점이 있어서

집안이 넉넉한 자제분들은 거기서 삶아 파는 라면을 먹었다

라면 냄새가 뭉게 뭉게 하늘로 솟았다

 

학교에는 미국인 포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평화봉사단원이었다

폴인지 늘 포라고 하여 정확한 함자는 모른다

 

영어를 가르치던 정웅길 선생님과 늘 수업에 같이 들어오셔서 교실 뒤쪽 빈의자에 슬그머니 앉으면

정선생님은 수업 중에도 영어로 많은 말을 주고 받았는데

우리는 한마디도 몰라 나중에는 관심이 식었다

 

포는 정선생님 댁에서 살았다

영어를 배우러 일주일에 두 번인지 매일인지 정선생님의 기와집에 가면

포선생님이 행랑채 떨어진 곳에 방을 정하고

한국식 밥상을 혼자 마주한 모습을 열린 문으로 본 적이 많았다

 

그때 겨울인지 봄인지 존 웨인이 초반에 잠시 나오는

<11인의 카우보이>란 영화를 지금은 흔적이 묘연한 홍천 중앙극장에서 보았다

 

평화봉사단은 험프리 의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케네디 대통령이 맞장구를 쳐서 1961에 처음 생긴 미국의 대외문화지원 프로그램이다

여러 가지 논란이 많지만 좋은 일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주한 미대사 캐스린 스티븐스가 충청도 예산 중학교에서 근무한 때보다 서너해 앞서

미스터 포 선생이 홍천중학교에 있었고

 

군대서 건빵을 우물거리며 천년 세월같은 보초 두시간을 뭉개노라면

차가운 바람이 군복의 깃을 파고 들 때

밤늦게 어디 포차에 앉아 힘에 겨운 채 맛없는 맥주를 기울일 때

더러더러 중학교때 교실에 앉아계시던 젊은 미국선생님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