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갈치천 포박자(抱朴子)<Soixante-trois>

guem56 2011. 5. 30. 15:26

무엇이든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글씨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문 서예를 배우러 가면

한일자 획을 긋고

그리고 나서 영자 팔법을 배운후 서너달 지나면 천자문을 쓰고

그 다음 구양순의 글씨나 안진경의 서첩을 따라 쓰게 된다

 

당나라의 강직한 장군이자 서예가인 안진경은

이태백이나 두보와 거의 같은 시대 사람이다

 

안진경도 양귀비와 현종이 살던 그 시절 안록산의 난으로 고생을 했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못된 사람의 미움을 사서 살해되었다

 

안진경이 남긴 법첩중에 마고산선단기가 있다

마고자갈치천사신선전운(麻姑者葛稚川神仙傳云)

이렇게 시작하는 선단기는 안진경 특유의 살이 통통하면서도 마지막 획의 치켜올림이 날카로운 전형적인 안진경 서체이다

 

구양순 글씨처럼 주욱 뻗고 매끄럽지 못한 듯 하나 자꾸 보면 더 매력이 있어보이는 글씨다

아주 오래전 나는 그 갈치천이란 말을 무슨 말인지 한문을 몰라서 강물이름인줄 알았다

그때는 유신시대였다

 

서울 혜화동에 삼련서점이란 중국 책을 파는 큰 서점이 있었는데 언젠가 문을 닫은 듯 하다

거기에 가서 포박자(抱朴子)란 책을 산 듯 하다

 

포박자엔 약재 이름도 많이 나오고 특히 영지 버섯을 불로초라 해서 그런지

신선의 버섯이라 그런지 예찬한다

포박자를 해석본 없이 뜻도 모르는 채 그 자유스런 분위기가 좋아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포박자의 지은이가 갈홍이고 갈치천은 그의 호이다

 

책따로 지은이 따로

그 갈홍이 나오는 선단기 따로 그렇게 알았었는데

 

원나라의 화가 왕몽이 갈치천을 흠모하여 갈치전이거도(葛稚川移居圖)를 그렸다

왕몽 또한 이름난 화가로 예술의 경지가 높았으나 말년에 나쁜 사람의 미움을 사서

억울한 옥살이 끝에 죽었다

 

포박자를 지은 갈홍은 그의 생전의 꿈대로 신선처럼 살다가

또 신선이 되는 약을 만들면서 말년에 광저우의 은거지에서 살았다

그는 그 전에 동진의 초대 임금 사마예의 부름을 받아

높은 벼슬도 했다

 

사마예는 제갈공명과 싸우서 이름을 남긴 사마의의 증손자이다

 

난세엔 누구나 생로병사의 틀을 벗어나

물소리 새소리 들어가며 신선처럼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년 3백 60일을 개미처럼 일하고

며칠의 휴가를 얻어

바다가 보이는 콘도에 갇혀 유사신선의 배역을 소화하고

사람과 차가 넘치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