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유치리의 메뚜기<Soixante-dix-neuf>

guem56 2011. 6. 18. 11:14

  

사람은 언제나 앞날을 점치고

지나간 날을 기억한다

 

한달 전 10년 전 그리고 아주 오래전

시간이 멀수록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감각과 결합하면

예컨대 아주 즐겁게 들은 음악

맛있게 먹은 음식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본 고개마루 높은 산골짜기

수십년 전이라도 생생이 기억의 화면에 언제나 재생된다

 

치악산이 바라보이는 원주 구곡

어느 선술집

 

그집 사장님겸 요리 하시는 분이 원주 토박이에다가

시내와 산자락 들판을 누비며

물고기 산나물 그리고 메뚜기를 잡아오시는 분이라

 

그 집에 가서 생맥주를 먹을 때 운이 좋으면 메뚜기 볶음을 안주로 시키거나

노란 몸체에 바늘로 쏘는 텡가리 물고기 매운탕을 만날 수도 있다

나는 10여년 전 우연히 그 집엘 들렸다가 메뚜기를 먹은 적이 있다

 

유치리엔 논이 많고 가을이면 메뚜기가 지천이었다

더운 여름이 지나면 푸르던 논은 은행잎처럼

자고 일어나면 한뼘씩 누런 황금색으로 이사를 간다

벼가 고개를 살쩌기 숙이면서부터 메뚜기는 철을 만난다

 

그리고 벼가 노란색으로 갈수록 메뚜기도 벼를 닮아 황색으로 변한다

살기위한 변신이다

 

내 어릴적 나는 가을엔 메뚜기를 잡으면서 지내다가 어느덧 고드름을 만났다

세월이 지난 오늘날

 

술을 한잔 한 어느 밤 잠들기 전에

나는 내 팔이며 종아리에 붙은 살을 보고 이것이 메뚜기 살이려니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잡기도 많이 잡았지만 먹기도 많이 먹었다

요즘엔 물을 담은 페트병이 흔하지만 예전에 메뚜기 잡을 때

힘들었던 꽃 피는 애로사항중에 하나가

메뚜기를 담는 용기 문제였다

 

들판을 지나다 논메뚜기며 들메뚜기를 만나면

솔이 달린 풀을 꺾어 그 직선으로 뻗은 풀줄기에 메뚜기를 꿰어서 들고 왔으나

많이 잡으려면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시마을 어른들은 늘 막걸리를 마셨고 소주는 귀했다 소주는 비쌌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마당 뒤켠이나 담벼락에 가끔씩 소주병이 있었다

고물장사나 아이스크림 총각을 피해서 살아남은 병들이다

 

이 병을 들고 다니며 병안에 잡은 메뚜기를 넣었다

소주병은 이홉 사홉 그리고 한되가 들어가서 이름 붙은 됫병이 있다

됫병은 들고 다닐 수 없다

 

무게가 클 뿐 아니라 길이가 길어 어린이는 계단 논을 타거나 높은 논두렁을 넘다가 엎어지면 바로 깨진다

사홉병도 만만하지가 않다 나중에 메뚜기가 꽉 들어차면 돌부리에 슬쩍 걸려 뒤뚱할 때 놓쳐 버리고 그러면 파삭 유리가 깨지면서 메뚜기는 땅바닥에 흩어진다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은 뒤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한두번 흐른 뒤 가을은 갔다

왜 억울한지 아는가?

나에겐 적어도 그게 거의 유일한 단백질이며 지방의 공급원이었다

우리는 가난했고 그리고 고기는 있어도 먹을 줄 몰랐다

 

메뚜기를 잡으러 논에 들면

농사짓는 어른들은 아주 못마땅해 하셨다

아이들이 쑤시고 다니면서 벼 나락을 떨구기 때문이다

 

벼 베어 놓은 논에 누워 있는 벼 위에도 메뚜기는 지천이나 이때도 논안에 들어가면

멀리서 어른들은 나가라고 손짓을 하셨다 역시 쌀알을 논바닥에 흘리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논이 텅 비면 그 많던 메뚜기는

홀연히 사라진다

 

하여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은 메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시마을 전문 메뚜기 사냥꾼 <솔>이에게도 해당이 된다

 

서리가 내려 논이 텅 비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이 잡아야

프라이팬에 튀긴 그 메뚜기를.....

 

메뚜기 억센 다리에 잇몸이 찔려가며

속 입술이 바깥 볼쪽을 향해 역시 메뚜기 다리에 찔려 불룩해지면서 터질 듯 할때

그 살이 찢길 듯한 아픔 속에서

우적우적 맷돌처럼 갈아댈 때 절대무비의 맛을

여러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약하고 입이 짧아 뭐든 먹지를 못하는

나는 메뚜기를 볶으면 밥을 엄청나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메뚜기를 생각하면

조선시대 어떤 사대부계층이 가지는 명나라 황제의 재조지은에 대한 감사의 마음...

아니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고마움을 절절히 느끼시는 분들의 그 마음구조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을 안개가 걷히고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한 풀 꺽일즈음

나는 소주병 하나를 간신히 구해 물레방아 스러져 가는 앞개울을 건너

 

작심을 하고

큰 저수지 아래 질펀한 논으로 간다

 

거길 가야 메뚜기가 동서남북 긴긴 논에 지천이고 아는 아저씨도 없을뿐더러

사람이 논에 있어도 다른 논으로 아득히 숨어 버릴 수 있다

 

다만 장미가 있으면 가시도 있다

거기엔 독사나 큰 구렁이가 있을 수 있다

하여 풀이 우거진 논두렁이나 깊은 논샘이 보이는 근처는 피해야 하며

여차하면 튀어야 한다

 

메뚜기를 잡을 때 애로사항은 또 있다

키가 작다 보니 억센 벼가 튕겨져 얼굴에 부딪치면 몹시 따가웠고 팔둑이며 얼굴에 상흔이 남았다

그리고 늘 잘 넘어졌다

 

이홉 소주병은 넘어지면서도 한손으로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메뚜기 잡을 때 즐거움 또한 많다

겹으로 업은 메뚜기를 만나면

마트에서 세일 상품 겹으로 테이프에 감긴거 만난 듯 하다

하여 나는 지금도 마트에서 둘이 묶인 상품을 보면 업은 상품이라 부른다

 

사나흘에 한번

한달간의 메뚜기 전쟁에서 세겹으로 업은 메뚜기를 만날 때도 있다

 

그때는 그걸 잡아서 병안에 넣든 못넣든 깊은 열반의 세계로 순간에 몰입된다

그만큼 기쁘다

 

마치 5월 어느 논두렁 물가에서 온몸이 파란 실잠자리를 만나서

그 은사의 날개에 묻어나고 튀어져 나오는 햇볕의 찬란한 스펙트럼에 마취될 때와 같은 느낌이다

 

만리장성을 못 본 사람

안나푸르나에 안가본 사람

산티아고를 걸어 걸어 발에 물집에 생긴걸 경험안해본 사람과 대화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메뚜기 안잡아 본 사람한테서도 역시 배어나온다

 

메뚜기를 잡다 보면 시간을 잊어버리고

점심을 건너뛰고 해가 뉘엿할 때

아주 지쳐서

 

오른 손엔 메뚜기 가득찬 소주병과 왼손엔 풀줄기에 꿰인 메뚜기 두름을 엮어서

나는 귀환전사처럼 집에 온다

 

여느때 같으면 야단을 크게 맞을 일이나

메뚜기 잡은 공이 지대하므로 플리바겐(Plea Bargain)이 성립하여

 

나는 우물가에서 냉수를 마시고

아직 낮의 햇볕 온기를 간직한 툇마루에 누어 하늘 위 여문 밤송이를 쳐다 보다 잠이 들고

그렇게 저녁이 왔다

저 메뚜기는 오늘 먹는게 아니다

 

하룻밤 재워서 메뚜기가 속을 비우고 난 뒤 병에서 꺼내

그 다음 일은 할머니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고 하여 메뚜기는 내일 저녁이나 아니면 더 기다려 무슨 날을 받아 먹는 것이다

 

내 살던 꿈의 마을

시마을엔 인스턴트가 없었다

뭐든 시간을 기다려 기다려....그렇게 먹고 그렇게 살았다

 

이제는 돌아 갈 수 없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이 시들하고 지루한 봉하촌장서거후 시대에 여전히 산소호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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