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새우와 모딜리아니<Quatre-vingt-dix-huit98>

guem56 2011. 7. 7. 03:59

 

청운의 꿈을 안고

파리에 온 모딜리아니는

 

배고픔에 시달리고

앱생트

독한 술에 절어서

서서이 죽어갔다

 

미술교과서에 실린

목이 길고

표정없는 여인이

잔느란걸 이제야 알았다

 

살아서 추웠고

죽어서 오래오래 꽃다발을 받았고

짙은 아쉬움속에서

 

살아있는 사람 모두를 처연하게 했다

 

내가 동해 어느 항구

그리고 서해 저물녘 바다에 갔을 때

새우를 많이 먹어 본 사람들은

날 새우 등을 뜯어서 입으로 넣었다

 

살아있는 새우만큼

그보다 더 살아있는 듯한

새우를

제백석은 잘 그렸다

제백석의 그림값이 하늘로 치솟는다는 오늘

나는 예술가의 삶은 퍽 고귀하다고 생각했으나

병들어 죽은 모딜리아니

사랑을 따라 세상을 바로 떠버린 잔느

 

그들을 불현듯 생각하며

제백석의 새우를 흉내내어 갈던 먹을 멈춘다

 

팔자가 아주 드세거나

아니면 긴 세월

산하가 숱한 이민족에게 시달리는 백년 세월을 인고하지 않으면

예술은 살아나지 못한다

 

나는 제백석처럼 오래 살 자신이 없고

시류를 천천히 바라볼 인내심이 없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보니

모딜리아니보다 더 잘 먹으면서

꽤 오래 살았다

 

이제 예술을 포기해야 하나 보다

장기하처럼

먼지로 쩌억 달라붙는 방바닥을 나는 둥글으면서

나에게 어제처럼 깊이 절망한다

그래도 새벽닭이 울면

그리던 매화는 마저 꽃을 피울듯 하다

먹은 알아서 매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