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산고수장(山高水長)<Centquatre 104>

guem56 2011. 7. 13. 15:05

쌀가게와 동네 빵집

그리고 다방이 사라진지 오래

 

남도의 어느 다실인지

봄내시 요선동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쌍화차를 드시던 예원이었던지

 

오래전에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글씨를 본거 같다

 

악양루기를 지은 북송의 범중엄이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란 글을 역시 남겼다

 

지난 달

중국 텔레비젼에서 백가강단

광무제 유수에 관한 강의를 30편쯤 본적이 있다

 

그 오랜 옛날

그러니까 유수에 관한 기록은

유방과 유비 사이에 있고

왕망이 신나라를 내세웠던

 

서양으로 말하면

옥타비아누스 시대인지....그렇다

 

그 옛날 한 인물이

왕족의 후예라고는 하나

거의 평민에서 몸을 일으켜 황제가 되기까지 과정에서

그렇게 기록이 많이 남아 있음이 대단하다

 

유수의 과거 친구중에 엄자릉이 있다

 

범중엄은 유수의 덕성과

엄자릉의 고고함을 칭송하면서

 

산고수장이란 네글자로 엄자릉의 풍모를 압축했다

 

그 말이 살아남아 천년을 이어온 것이다

 

내가 엄선생사당기를 읽으며서 놀란 것은

역의 고괘와 둔괘를 인용한 부분이다

 

蠱(산풍고 山風蠱)괘의 상구에

불사왕후 고상기사(不事王後 高尙其事)란 말이 있고

 

屯(수뢰둔 水雷屯)괘의 초구에

이하귀천 대득민야(以下貴賤 大得民也)란 말이 나온다

 

범중엄은 이런 괘를 인용해서

 

엄자릉은

귀하게 된 과거 친구 황제 유수가 내린 두터운 벼슬을 버리고

부춘산으로 떠나서 고고함을 얻었고

 

유수는

때를 기다리고 몸을 낮추어 백성을 얻어 후한을 세웠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나는 역의 풀이를 더 자세히 얻으려 소동파의 역주를 보았다

 

소동파는

이하귀천이란 글구를 이렇게 풀었다

 

군자견고지점즉섭천구지

급기성즉불사왕후이원지

고지성야양의불치

군자불사사

 

君子見蠱之漸則涉川救之

及其成則不事王候以遠之

蠱之成也良醫不治

君子不事事

 

점(漸)과 성(成)은 이루어진 단계

되어가는 과정의 정도를 말하는가?

 

독안의 벌레가 성했을 때

명의는 치료를 그만 둔다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인가?

 

빗소리는 창밖에 여전한 대낮인데

소동파가 높은 산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고

공부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 사실 또한 절절하다

'글과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세자<Cent vingt-trois 123>  (0) 2011.08.10
방효유 심려론<Cent vingt-duex 122>  (0) 2011.08.09
헤밍웨이<Cent duex>  (0) 2011.07.12
르느와르와 피카소<Cent un>  (0) 2011.07.11
경포호 서호<Quatre-vingt-dix-neuf 99>  (0) 2011.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