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방효유 심려론<Cent vingt-duex 122>

guem56 2011. 8. 9. 18:37

한낮 더위가 비와 습기가 버무려져

기세가 대단한 날

책을 펼치다 보니

명나라 초기 만고충신 방효유선생의 심려론(深慮論)

고문관지 속의 글을 보게 된다

 

가끔 이글을 보노라면

천년 흥망사가

손안에 모래처럼 물결에 빠져 나가는 듯도 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에 처연함을 안긴다

 

단아한 문장은 그 뜻 또한 깊어서

나는 글자 놓인 대로 읽기만 할 뿐

자세한 내용은 짚어내기 힘들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慮天下者 常圖其所難 而忽其所易

備其所可畏 而遺其所不疑 然而禍常發於所忽之中

而亂常起於不足疑之事 豈其慮之未周與 蓋慮之所能及者

人事之宜然 而出於智力之所不及者 天道也

 

천하의 일을 근심하는 사람은

늘 어려운 곳에 대비하고

쉽게 생각되는 곳은 소홀하게 한다

 

두려운 바에 대해 준비하고

의심이 안가는 곳은 흘려버린다

 

그런데 화는 소홀한 가운데에서 나오고

어지러움은 의심을 덜하는 곳에서 터져 나온다

 

어찌 사려가 치밀하지 않아서 일이 생기겠는가?

 

대개 생각이 미치는 못하는 데서 화가 터져 나옴은 사람 사는 일에 흔한 건데

지혜가 못 미치는 곳에서 화가 생기는 것은 사람 밖의 하늘이 주관하는 것이라....

...............

 

대단한 학문에 의학까지 밝으신 정학(正學)선생이

구오(九五)의 자리를 찬탈한 영락제에 의해 비명에 세상을 떠난 이치는 과연 무엇인가

 

늘 궁금했는데 대저 큰 학자는 자신의 운명을 아시는지..

 

하늘(天道)이 나에게 화를 내림은 내 지혜가 거기까진 안가는 것인지

알면서도 대의를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은 버리는 건지

나는 더위에 묻혀서 거기까진 판단이 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