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병과 치유)

이동원 비위론(脾胃論) <Cent sept 107>

guem56 2011. 7. 18. 12:26

무려 81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청명상하도

북송의 화가 장택단(1085~1145)이 청명상하도를 그린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나

 

그림에 담긴 아름답고 번화한 북송의 수도인 카이펑(開封)

그 도시는 곧 여진이 세운 금나라의 땅으로 되었다

 

서화를 좋아했고 그 자신 서화가였던

휘종은 북녘 고구려땅이었던 심양으로 잡혀갔고

아홉 번째 아들 조구가 임안 현재의 항저우 근처로 와서 남송을 세웠다

 

금나라가 개봉을 차지한지 100여년이 흘러 1132년 임진년

이번엔 몽골과 남송 연합군에 의해 개봉이 포위되고 함락되었다

 

그 임진년 봄 여러달에 걸친 개봉성 공성전에서

죽은 군사와 백성이 백만을 헤아리고

그런 전쟁의 와중에

 

보중익기탕과 금원사대가의 한사람으로 알려진

의원 이동원이 그 성안에 있었다

 

당시 개봉성은 성문이 열 개가 넘고

그 문 하나마다 하루에 1천 내지 2천의 주검이 밖으로 나왔다한다

비위론(脾胃論)의 짧은 서문은 원호문(元好問)의 글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조임진지변 오육십일지간 위음식로권소상이몰자 장백만인

(遭任辰之變 五六十日之間 爲飮食勞倦所傷而歿者 將百萬人)

성안에서 죽은 자가 백만인데 대개 음식을 못먹고 피로해서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덧붙인 글에 보면 원래 의원들이 보기엔 상한병으로 죽은줄 알았는데 실은 못먹어서 굶주려 죽은 것이다

개봉이 함락되기 전에 금나라 마지막 황제 애종은 동남의 채주로 탈출 하는데

황제도 식량이 없어 굶었다는 기록도 있다.

 

백가강단 중국텔레비젼 프로에서 이동원 편을 보면서 이런 사실을 들었고

동원의집(東垣醫集)에서 살펴보니 확인이 된다

 

이동원이 저런 끔찍한 지옥의 현장에서 있었던 때는 52,3세 무렵이다

부자집에서 태어나 금나라의 세수(稅收)업무를 보는 관리를 했던

이동원은 중년에 전쟁의 참화속에서 기아와 허로 그리고 온병에 시달리는

일반 백성을 살리는 방편으로 비위론을 쓴 듯 하다

 

난세를 의원으로 산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을이 되어 귀뚜라미가 울면

금사(金史)와 초기 원사를 보면서 의원 이동원이 어떻게 말년을 보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