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병과 치유)

무희옹 ... 어머니의 마음<Cent-neuf 109>

guem56 2011. 7. 20. 12:54

무희옹(繆希雍 1546~1627)은 명나라 말기의 의사이다

율곡보다 10년 아래 이며 유성룡보다는 4년 뒤의 사람이다

 

어려서 병약해서 의술을 배웠으며 말년엔 동림당에 관여하여

환관 위충현의 횡포에 맞서는 우국지사의 생을 살았다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 노중련(魯仲蓮)은 후세 선비들의 본받을 만한 모델로

전국책과 사마천의 사기에 노중련의 이름이 나온 뒤로 2천년 세월 숱한 시문에

노중련의 이름이 등장한다

 

조나라 한단이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함몰위기에 있을 때

노중련이 지혜를 발휘하여 조나라를 구하고 아무 댓가 없이 구름처럼 가볍게 떠났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무희옹에 대해서 노중련의 풍모가 있다고 한다 의원이며 유학자인 무희옹에겐 어울리는 찬사이다

 

무희옹의 친구 장렴지(莊斂之)가 원래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인데

갑자기 설사병이 걸려 낫지를 않는다

 

광필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때가 정사년(1617)이니 무희옹도 그렇고 아마 장렴지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을 것이다

설사가 심하면 청수(淸水)에 백지(白脂)뿐이라

변을 보면 맑은 물에 흰 기름기가 뜨는 것이니

약이든 죽이든 야채든 다 소화가 안되고 그대로 나올 지경이 되었다

 

여러 의원을 부르니 혹은 체했다 하고 혹은 더위를 먹었다 하고 혹은 한사(寒邪)가 침입했다 하니

숱한 약을 써도 듣지를 않아서 한달이 지나자

살이 다 말라붙고 속절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 장렴지의 모친께서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면서 아들 대신 죽을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恨不以身代)

 

 무희옹이 장렴지 집에 들려서

병의 원인을 화열(火熱)로 보고 황련과 백작약 석곡등을 써서 설사를 멈추게 한다

 

이 약을 오래 먹은 장렴지는 나중에 설사는 그쳤으나 이번엔

배고픔이나 배부름을 못느끼고 아랫배가 매우 불편하여 이를 다시 호소하니

무희옹이 설사가 심한 뒤엔 망음(亡陰)이 되므로

보약을 써야 한다며 인삼 작약 산수유 등으로 환을 만들어준다

 

<광필기>엔 환자의 병증과 의원의 진단 그리고 치료 과정이 상세하나

내가 글이 짧아 그 자세한 사정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글을 읽다보면

예나 지금이나 환자는 늘 병에 시달리고 의원들은 저마다 진맥이 다른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병을 고치는 과정은 전쟁의 양상과 비슷하다

적의 수와 적의 작전을 파악하는 지휘관의 판단능력이

바로 의원의 병에 대한 진맥과 닮은 꼴임은 알겠는데

병이란 미끌한 미꾸라지가 어린아이 손목을 빠져나가듯이 용의(庸醫)의 눈을 속이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