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

비비안 리<cent onze 111>

guem56 2011. 7. 24. 04:08

사람이 쉬지않고

숨을 쉬고

듣고 말하고

술잔에 술을 끊임없이 따르듯이

 

오징어는 헤엄을 친다

넓은 바다를 떠난지 오래인데

트럭에 실려와

정착한

저 작은 수족관에서

 

곧 다가올

생의 마감을

모르는 채

태연하게 헤엄을 친다

 

만약

저 오징어의

낮과 밤 쉼없는 헤엄이 무의미하다면

사람들의 숱한 언어 또한 쓸데 없을 거 같다

 

오래 전에 남은 기억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차가 부서지고

북군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타오르는 불길과  가난이 밀려올 때

허리 가는 비비안 리가

초록 커튼을 끊어내어 휘감은 옷

 

그 천을 누군가 남겨두어

불안과 고독속에 시들은 비비안 리를

강한 스칼렛으로 살아있게 한다

 

초록 상추잎 위에 채로 된

오징어는 곧 모든 자취를 지우고 사라질 것인데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은

압축하면

수족관에서라도 헤엄치는 오징어의 운동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매사 어떤 동작에도 가치를 매겨

끊임없는 선택을 하는 인간의 노력은

묵묵히 헤엄치는 오징어에 비하면

경망스러운 일일수 있다

 

그렇게 계산하면

내가 낮잠을 자다가

텔레비젼에 멍하니 시간을 앗기는

숱한 반복이 꼭 무의미하지는 않다

 

누구나 다

비비안 리처럼 주인공이 되어

강렬한 인상을 백년 뒤에도 남길 꿈을 꾼다면

관객은 누가 하고

소는 누가 키우겠는가?

 

속절없이 사라져간 오징어에

미안한 감은 있으나

나는 우울과 무기력에서 멀리 벗어나

숨쉬고 있는 사실에

강한 존재감을 느껴

 

갑자기 떨어지는 새벽 빗방울

그냥 맞으면서 다니던 어제와는 다르게

우산을 챙기는 손에 힘을 느낀다

 

이 밤이 가면 태양이 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