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요선동 냉면집<Cent vingt>

guem56 2011. 8. 7. 20:02

소양강 나린 물을 굽어보는 봉의산

그 봉의산 자락이 내린 곳에 도청 아래 요선동 골목이 있다

30여년전 거기엔 냉면집이 있었다

 

넓적하면서도 우묵한 그릇에

냉면사리가 둥그런 산처럼 원만하게 가운데 자리하고

거기 편육 한두점과 얇게 저민

혀에 닿으면 시원함을 넘어 시린 배 한조각

세월이 흘러 기억이 닳았는지

사리위에 달걀 반개가 비스듬이 동무했는지도 모른다

 

시원한 국물이 담백하니

면발을 둥둥 띄우고 먹다보면

입안이 차거움에 얼얼하면서

마지막 국물이 목을 타고 넘으면

배가 출렁대도 여전히 더 먹었으면 했던 그 맛이

그시절엔 지금의 추억만큼이나 아쉽지는 못했다

 

여름날

그 평양 냉면 집안엔 손님이 그득하여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방안에 만좌(滿坐)하신 분들은

이마에 빛이 나거나

흰수염 백발이 성성한 노인 분들이 많았다

 

실향민

북에 고향을 두고

봄내시 여름 더위에 지친 분들이

고향의 향수를 음미하러 그리고

오래 소식이 드문 벗들을 만나러

어려운 걸음을 하신 것이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점심을 마치고 나오는 노인분들의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했으나

눈빛은 고향을 두고온 처연함이 선명하게 배어 있었다

하여 그 집에서 냉면을 먹고 나오는 날이면

입안의 즐거움은 삶의 신산(辛酸)을 전해주는

그 엄숙한 분위기에 늘 눌렸다

 

냉면집은 언젠가 교외로 자리를 옮긴 듯하고

나는 그후 냉면을 먹을 때마다 그 요선동 냉면집에

차곡하게 방을 메우고 앉으셔서 두런두런 걸걸한 이북 사투리로

한을 토해내시던 그 노인분들의 목소리

그 깊고 서러븐 눈빛을 늘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