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유치리의 소는 여물을 먹고

guem56 2010. 3. 16. 18:22

먼 금은산 자락에 아직 눈이 희끗한

삼월초

 

어둠이 서서이 찾아드는 저녁 무렵에

소를 키우는 집의 굴뚝은 연기가 더 짙다.

 

소는 여물을 먹는다.

 

19세기에 태어나셨음이 분명한

진주할아버지 방에 붙은 작은 부엌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있었고

 

그 솥안엔 볏짚이며 옥수수 마른 대며

여러가지 건초더미가

작두날에 쓸려

가마솥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진주할아버지 방에 불을 지피시면서

쇠죽을 끓여 소를 먹이고 나서

사람은 저녁을 먹었다

 

진주 할아버지의 진주는

증조할아버지의 증조가

그래 소리가 난걸 오래 지나서 알았다

 

나는 하릴 없이

어둠이 익어가는 속에서

마굿간의 소가

김이 무럭 무럭 나는 여물을

큰 입으로 먹는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서있다가

밥 먹으러 오라는 할머니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이내 어둠이 무섭기도 해서

마루로 뛰어 올라 안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시골 밤은 한없이 길어서

저녁밥을 먹고 나면

윙윙 거리는 라디오의 연속극이 끝나고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쉐엑

이북 방송이 잡히기도 하던 깊은 밤으로

 

잠을 자러 들어갔다.

 

그때가 바로

이역만리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

지금부터 태국과 한국 한국과 태국의

킹스컵 축구 경기를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

아나운서 이광재입니다.

 

그런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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