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

왕안석과 소동파 <Cent cinquante- sept 157>

guem56 2011. 10. 10. 14:29

여든 즈음의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압록강 건너온 편지는

젊은 인재를 생각하는 간절함이 있고

학문의 정진에 대한 바램이 곡진하다

 

평생 소동파를 숭상한 베이징의 스승을 따라

추사 또한 소동파에 대한 흠모가 각별하다

 

다산도 두 아들에게 평생 시문을 따라해도 동파를 흉내내기 힘들다 했다던가

 

어떤 사람들은 최류탄 자욱한 거리를 헤매다가

군대로 가거나 수인이 되고

어떤 사람들은 책상에 몸을 옭아

고시 공부를 하던 서울 올림픽 여러해 전

 

나는 하릴없이 시간을 메우느라 소동파의 적벽부를 읽었고

민음사판 세계시인선 얇은 책의 그 글이 마음에 들어 전문을 외웠다

 

어느날인가 어디선가

소동파가 고려에 책을 보내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1080년대 중반 대각국사 의천이

당시 소동파 살던 북송의 카이펑을 방문하고

남녘 항저우 서호 고려사에 머물렀는데

 

당시 고려는 북쪽의 거란, 요나라를 의식하여 송나라와 적극적 연대를 하지 않고

불가근 불가원 등거리 외교를 했으며 이점이 소동파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 송나라는 왕안석의 개혁을 하던 시기였다

 

비슷한 나이이면서 소동파가 역시 존경하던 사마광은 왕안석과 한때 절친이었으나

신법에 극력반대하여 낙향하고 십년 넘는 세월 자치통감을 썼다

 

소동파의 부친인 소순은

구양수의 천거에 의해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아들 소식 소철과 함께 문명을 떨쳤다

 

소순은 변간론(辨姦論)이란 글을 지어 고문관지에 전하는데 평자의 해설을 보면

간신은 바로 왕안석을 가리킨다 하였다

 

변간론을 읽은지 20년이 흘렀고

나는 왕안석을 좋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정조 이산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하는

서간초서집에 보면 구양수가 왕안석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는 바

절절이 존중하고 높이 평하는 분위기라

구양수가 소식의 스승인바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왕안석의 글 또한 사방에 남아있고

남긴 시문이며 송사(宋詞)엔 서정성이 넘쳐 흘렀다

 

신법당에 밉보여 여기 저기 떠돌다

황저우에 귀양살이 비슷하게 살던 소동파의 답답한 심정은

한식에 지은 시첩에 전하거니와

 

어느 핸가 왕안석 또한 조정에서 파직되어 진링(金陵 지금의 난징)에 은거하고

소동파는 어디론가 가다가 양쯔강 선상에서 난징을 지난다

 

소동파는 왕안석을 찾았다

소동파는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기다리던 왕안석을 만난다

 

식금일감이 야복견대승상

형공소왈 예기위아배몰재

(軾今日敢以 野服見大丞相

荊公笑曰 禮豈爲我輩沒哉)

 

제가 오늘 감히 대승상을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뵈옵니다

하니 왕안석(형공)이 답하기를 예란 우리같은 사람에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백가강단의 강진(康震)교수 말씀을 떠듬 떠듬 헤아려보니

두사람은 서로 정치면에선 의견이 달랐으나

학문과 시문 예술에 있어선 서로 존중하고 인정함이 대단하였다

 

인물이 인물을 알아보는 법

그런 맥락이다

 

오랜 세월 북송때 신법에 대한 신구법당의 갈등의 전개

왕안석이란 인물에 대한 얼개가 대충 그려졌다

 

내가 게으르지 않고

여기저기 부지런히 책을 뒤졌다면 알 수도 있었겠으나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일에 부대끼는 장삼이사는 궁금함을 이불처럼 이고 산다

 

만년의 퇴계선생은

손자 안도의 과거 공부 걱정과 지도가 큰 일이었다

 

그 와중에 호남땅에서 기고봉의 편지가 찾아 들었고

고봉의 학문을 아끼는 퇴계는

술은 건강을 해하니 절제하라 당부한다

 

고봉은 술을 좋아하여 그런지

건강을 해하여 마흔 여섯의 나이에

정신적인 스승 퇴계보다 일찍 떠났다

 

선들바람이 부는 가을

나는 마음 한켠이 퀭하고 몸이 삭아가는 느낌이 있다

 

의천이 남겼다는 대각국사집이 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순천 송광사 그 너머 선암사엔 의천의 자취가 있다고도 하고

 

선교(禪敎)의 무진장한 불법을 정리한 고려시대 의천

북송의 선진 학문을 고려에 금수하라는 소동파의 의견을 제쳐내고

바다건너 구해온 그 불전의 문해(文海)

 

그리고 왕안석의 친구였다던

사마광이 남긴 3백만 자의 자치통감 한구절이라도 읽으려면

 

술보다 밥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결심은 열두시간을 못넘김을 나는 선지(先知)한다

 

신묘년 중추양광미풍교교지시(仲秋陽光微風交交之時)

                                                     天下太平人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