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병과 치유)

주단계 자음학파...<Cent soixante-dix-huit 178>

guem56 2011. 11. 29. 15:02

그림을 잘 그렸다는 송나라 휘종이

금나라 군대에 잡혀간후 다시 100여전쯤 지나

1233년 무렵에 북송의 수도였으며

 

이번엔 금나라 조정이 들어섰던 개봉(카이펑)이 함락된다

이때 이 성엔 보중익기탕의 명방을 만든 이동원이 아마도

금나라 관원의 신분으로 있다가 몽골군의 포로로 잡혔을거란 이야기가 있다

 

세월이 흘러 남쪽 항저우근처 임안으로 흘러간 조구는 남송을 세우고

남송의 이종(理宗  조윤 趙昀 재위 1224~1264)은 남송 마지막 시기에

긴 세월 나름 몽골의 끊임없는 위협을 막아내고 나라를 유지한다

 

이때 이종임금의 어의를 지낸 나지제(羅知悌)란 명의가 있다

 

원래 금원 사대가라 칭하는 하간학파 유하간의 제자인 형산화상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

항저우에 자리잡고 나지제에게 의술을 전했으니 나지제는 유하간의 2대 재전제자가 되며

나지제는 금원사대가인 유하간 장자화 이동원의 의술을 종합적으로 소화했다

 

나지제가 노인이 되었을 때

40대의 주진형이 그를 찾는다

 

원래 유학자인 주진형은 나이들어 소문을 읽고 난뒤 의학을 깊이 배우고자 뜻을 세우고

당시의 명의 나지제 집을 찾는데....나지제는 전수의 뜻이 없어서 만나주지 않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석달을 집앞에 기다렸는지 일설엔 삼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정성에 감복한 나지제는 어느날 목욕재계하고

초면의 제자를 평생의 제자로 맞이한다

 

두 사람은 초견여고(初見如古)

처음 보았는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은 첫만남을 가졌고

주진형은 노선생의 의술을 물려받았다

 

나지제의 처방은 고방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보(補)와 공(攻)을 앞뒤로 바꿔서 병인의 상태와 시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창방을 썼다고 전하고

주단계 또한 이런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더욱 진일보한 의술의 경지를 열었다

 

주단계를 자음학파라 하는데

왜 양은 남고 음은 늘 모자란다는 양상유여 음상부족의 이론을 펼쳤는가?

그 바탕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오늘 어느 중국책을 보다 보니

일수불능승오화(一水不能勝五火)란 말이 있다

 

때론 추상적인 명제가 실제를 유도해내고

수많은 현상에서 어떤 한 줄의 문장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요즘도 세상엔

상한론이나 동의수세보원 방안을 그대로 적용하여 방제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거기에 대해 별로 말을 덧붙일만한 처지는 아니나

주단계의 설명은 나에겐 와닿는 부분이 있다

 

고방치금병 정여탁구옥주신옥

(古方治今病 正如拆舊屋湊新屋)

 

훌륭한 숙수(쉐프)는 신선한 재료를 먼저 고른다는 말 또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