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용문사 가는길 상원암 (열 다섯)

guem56 2012. 2. 17. 14:55

화로에 재를

다시 한번 잘 덮고

 

아랫방으로 내려오신 할머니는

남포불을 끄시고 난후

심지에서 나는 석유냄새 속에서

 

나무관셈보살 한번 천천히 말씀하시고 주무셨다

시골 겨울 밤은 길고 긴데

 

뒷동네 재훈이형 할머니가 놀러 오셔서

아무 내기도 없는 민화투라도 치는 날이면

부엉이 우는 소리와

간간이 이 깊은 밤중에도 신작로를 내달리는

 

화랑부대 제무시 트럭 소리가 귀이 잡히지만

재훈이형이 원주로 고등학교 다니러 가서

손주 밥해주시러 가시고 나서는

밤이 더욱 길었다

 

봄이 오고

아지랭이 피고

저수지 건너 금은산에

황새들이 흰 날개 숲을 이룰 즈음

 

사월 초파일이 오면

재훈할머니가 돌아오셔서 두 분은 꼭두새벽 밥을 드시고

자그마한 합승버스를 타시고

 

동면 수타사로 떠나셨다

쌀을 자루에 담아가시더니 언제부턴가

돈을 가지고 가시는 듯 했다

 

수타사 높은 지붕위에 청기와장이 둘 있는데

밤에도 빛이 나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어른들이 서넛 들어서서 팔로 안아도

모자른다는 큰 은행나무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혔다

 

두 할머니는 가을 되면

서울에 딸들을 보러

나란히 출행하시관대

양덕원에 가셔서

 

서울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용문에 내리셔서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가셨다

 

그때까지 기차가 뭔지는 알았으나

본 적이 없는 나는 기차와

서울 창경원에 다른 동물 다 그만두고 기린이 보고 싶었다

 

기차는 중앙선이었고

먼 뒤에

나는 느릿느릿한 중앙선을 여러번 탔으나

이젠 용문역은 전철 역이 되었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본 건 언젠지 기억이 없다

다만 나무도 힘이 빠지는지

링거 수액을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던 은행나무가

 

첫대면 바로 몇 분 전

용문사 보이는 모랭이를 돌아갈 적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는 듯 해

설레이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인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작은데다

병이 든듯 하여

마음이 어두웠다

 

용문사를 이런 저런 이유로 두어번 더가고

강산이 변한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초의시를 읽다가

모저상원(暮抵上院)이란 시를 만났다

 

용문사 올라가는 길과 다른 쪽에

자리잡은 요즘의 상원사에

초의스님이 들렸고

같은 여정으로 용문사에도 가셨는지

지용문사(至龍門寺)란 시도 있다

 

 

상원암에서 지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언운무심       誰言雲無心

아래생궁석       我來生穹石

염염도중봉       冉冉度中峰

지지류원객       遲遲留遠客

 

구름이 무심하다던데

내가 오니 하늘로 솟네

산봉우리 이리저리 떠돌면서

멀리서 온 나그네 머물라하네

 

추운 겨울 지나고

새 봄이 오면

상원사에 한번 가서

절 마당 양지바른 한켠에서

 

구름 구경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