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보시라이 네웨이핑 김학철

guem56 2012. 3. 27. 14:06

강원도는 휴전선 접경지대라

7,80대 연세 드신 분들 중엔 함경도 원산 등지에서 오신 분들이 많다

 

세월이 흘러서 그 분들은 점점 가고픈 고향을 못가보고 이승을 떠나는데

 

(격정시대)의 작가 김학철은 원산 사람이다

서울 어딘가에

원산을 떠나 학교 다닐 때 하숙집 골목이 그대로라고 좋아하시던 그분은

21세기 길목에서

한국으로 오셔 병원에서 치료도중 식도가 다치셔서 급작스럽게 가셨다

 

파란만장한 그 분의 일생에서

1966년 중국 문화혁명은 가혹한 10년 세월 감옥살이를 선물했고

일본군과 전투중에 부상으로

나가사끼 감옥에서 다리를 절단한 김학철은

남과 북을 떠나 국적을 둔 중국에서 고된 나날을 보냈다

 

그때가 중국이 자랑하는 바둑계의 철의 수문장

네이웨이핑이 역시 만주 어느 농장에서 고된 농사일을 하던 때다

 

바둑천재 네이웨이핑은 한때

중국지도자 첸이와 어릴 적에 기념대국을 했다고 하나

문혁을 주도한 린뱌오는

양쯔강을 건너 상하이를 장제스 군에게서 빼앗을 때 동지였던 첸이 또한 시골 농장으로 보냈다

 

충칭은 양쯔강 삼협 근처의 대도시

무려 8만 평방 킬로미터

거의 남한 면적에 가까운 이땅에 3천만 이상이 사는 중국의 직할시

 

여기 총책임자가 이번에 해임된 보시라이이다

 

보시라이의 부친이 보이보(薄一波)

중국 공산당의 개국공신인데

보이보도 문혁기간동안에

 

마오의 부인 쟝청한테 미움을 사서 10년 넘는 감옥살이를 했다

 

그의 부인은 사인이  매을 맞아서 죽었다고도 하고 자살이라고도 한다

보이보의 둘째 아들 보시라이 또한

문혁기간에 감옥살이를 하고 농촌으로 하방 되었다고 하나

또 한편에선 그가 부친을 비판하고 홍위병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자세한 정보를 더 살펴야 하나 차이나의 실각 인사에 대한 과거를

투명하게 알기는 어렵다

 

얼마전에 엉뚱하게 보시라이의 직속 충칭시 공안책임자

왕리준이 갑자기 쓰촨 청두의 미국영사관에 들어간 뒤 촉발된 일련의 사태로

결국 보시라이는 벼슬길에서 낙마했다

 

그가 충칭에서 범죄를 막고 경제발전을 이룬 공은

널리 알려졌다

 

보시라이가 카리스마가 강하고

문혁시절 노래를 부르며

성장을 쫓는 오늘날 중앙정부의 그가 볼 때 주자파적인 시류를 너무 삐딱하게 보아서

후진타오 원자바오 라인에게 미움을 샀는지

하루아침에 낙마했다

 

중국의 현재 정치판도에서 그의 부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걸 나는 저울질 하긴 어렵고

개인의 영욕과 진퇴 그리고

문화혁명의 그늘

 

그런 걸 잠시 생각해 본다

'동서남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일강 알렉산드리아  (0) 2012.05.03
잉그리드 베탕쿠르 콜롬비아 (33)  (0) 2012.05.01
툴르즈의 총기난사 (27)  (0) 2012.03.21
티벳 소신공양 구채구 (26)  (0) 2012.03.20
마리오 몬티 이태리 총리 (열셋)  (0) 201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