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뽕나무와 누에 후저우 샤오롄좡(小蓮莊)

guem56 2012. 6. 1. 12:21

매화학교에 처음 갔을 때

서병희 선생님이 담임하시던

1학년 교실은

 

운동장 다음 큰 교사 뒤편에

교실 두 개만 달랑 있는 초가집 건물이었고

창문이 유리가 아니라 얇은 세사 철망이었다

 

1,2,3학년을 저학년이라 했고

4,5,6학년을 고학년이라 했다

 

나는 어서 고학년이 되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나

고학년은 실과란 과목을 배웠다

 

실과시간에 고학년은 교실에 있지 않고

오지울과 지거치 올라가는 갈림길

신작로 옆의 학교 밭에 가서 웅성거렸다

 

거기엔 키작은 뽕나무가 있었는데

뽕나무는 원래 커다란데 왜 저리 작을까 했는데

학교에서 심은지 얼마 안되었다

 

배구 감독이신 이경복 선생님이 운동장 어딘가에서

그늘따라 놀러온 동네 아저씨들과 말씀하시는걸 귀동냥 해보니

 

앞으로 비단은 세계로 수출이 되고 양잠은 그래서 나라 살리는 길이라

뽕나무 많이 심어야 한다...

 

비단과 양잠을 나는 구별 못했다

그리고 시골에선 뭘 모르면 알때까지

달이 가고 해가 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외갓집 대청에선 오래된 마루바닥의 나무에서 나는 향이 있었고

그 마루의 서늘한 기운을 발로 밟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어느 해

그방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나무 시렁이 이층으로 있었고

거기엔 뽕잎이 가득 있었으며 뽕잎마다 하얀 누에가 붙어서 뽕을 먹고 있었다

 

누에는 담배냄새를 싫어하며

바람도 저어해서 문을 이리저리 여닫지 말고

그 곁에서 설치지 마라 하여 어린애들은 그 곁에 오래 있지 못했다

 

나는 사촌누이들이 바쁜 틈에 살짝 우영이를 앞세워 누에방에 들어갔다

 

작은 누에는 그것대로 큰 누에는 좀 더 징그러웠다

 

얼마 있다 다시 가본 그 방에는

누에는 사라지고 땅콩껍질 같으나 좀 더 크고 하얀 오뚜기 모양의 고치가

대추나무 열매처럼 열려있었다

 

어느날 이경복 선생님이 다시 누군가에게

침통하면서 허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누에는 끝이네...뽕나무도 그렇고....

 

중공에서 워낙 싼값으로 쏟아내서 양잠은 끝이다 그런 말이 들렸다

 

외갓집의 누에는 더 이상 볼수 없었고

유치리 여러집에서 키운다던 누에 이야기도 사라졌다

 

내가 대망의 4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밭의 키작은 뽕나무들은 다 사라졌고

더러 낫을 피한 잔 그루터기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초여름이 되어 입술안이 시커멓도록 오디를 따먹던 그 옛날

그 뽕나무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동네 어귀에 용케 화를 피해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뽕나무는 아래 그루터기가 굵고 키도 컸다

먹을것이 지천인 요즘 세상에 오디를 따러 나무위로 오르는 아이는 별로 없다

 

다 학원에 가서 영어를 공부할 따름이고

오디는 건강식품이 되어

사람들은 홈쇼핑에서 오디잼이나 아이스 오디를 주문할 뿐이다

 

중국 저장성 후저우(湖洲)

태호의 오른쪽엔 소주가 있고 아래쪽엔 호주가 있다

 

후저우시의 난쉰구는 오래된 비단생산지이고

비단을 거래하여 엄청난 재산을 모은 호상(湖商 絲商)들을 배출한 곳이다

 

오늘날도 유씨가문의 소련장(小蓮莊)과 장씨 가문의 적원(適園)이 남아있다

소련장은 연꽃이 고운 아름다운 정원이며

일본군 침략으로 손상된 적원은 커다란 놀이터가 되어

후저우 아이들이 목마를 탄다

 

1970년대 중국 어디에서 누에가 뽕을 먹고 자랐는지 자세히 모르나

유치리의 뽕나무는 그렇게 사라졌다

 

뽕의 뿌리 껍질을 상백피라 하고

오디를 한자로 상심자라 하며

나무줄기는 상지라 한다

 

다 약간씩 다른 용도로 한약재로 쓰여서 상엽과 함께 뽕나무는 버리는게 없다

 

정선 장터에 가면 뽕나무 장아찌도 있고

요즘은 뽕잎을 갈아 국수도 만들고 이래저래 뽕나무는 심을 만한 작목이다

 

상백피는 가래 기침을 삭히고 혈압과 붓기를 내리며 소변을 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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