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내린천 가는 길에

guem56 2012. 6. 23. 10:26

구룡령 서쪽 자락에서

아홉살이 고개 동쪽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섞이고

 

김부리 고개 너머너머

산굽이마다 실개천 물까지 보태서

 

내린천이 흘러간다

 

하남을 지나 기린으로 가면

물줄기는 기린중고등학교를 돌아나간다

 

맑고 파란 그 물줄기에

꺽지와 피라미 부러지가 산다

 

더운 여름날도 물에 들어가면

발이 시리던 미산골의 사행천은 이제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내린천 물엔 꺽지가 살고 있다

 

산골로 가고 물이 시릴수록

텡가리와 뚝지가 있던데

이제 그런 고기는 보기가 드물다

 

기린에 사는 허생원이 꺽지와 부러지를 잡아서

한솥 매운탕 거리를 보내왔다

 

살림살이가 시원찮은

사람에겐 누가 뭘 가져다 주는 법이 별로 없고

명절날 마당앞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는데

그런 와중에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아직 산소를 호흡하는 면 외에

사회생활을 하는 편에서 봐도 내가 살아있음은 확실한가 보다

 

한주일은 그 매운탕을 먹으면서 지나갔다

언제 이런걸 또 만나나 싶어서

좀 억센 뼈까지 다 오도독 이맷돌로 갈아서 먹었다

 

작은 대추나무

미꾸라지 뜨는 논우물을 지나

짧은 섶다리를 건너면

재숙이 집이고

 

그 집 마당가는 길

왼편엔 디딜방아가 있다

돌확속엔 콩도 쌀도

왼간 유치리 먹을 거리가 들어앉고

 

할머니들 아주머니들이 수시로 모여들어

체를 가지고 빻아낸 곡물을

먼지를 하늘로 올리시며 흔들어 대신다

 

재숙이네 집에선

기름을 짜서

가끔씩 고소한 참깨 냄새가 나면

콩깻묵이 메주덩어리처럼 마지막을 장식했다

 

시골에선 밤엔

소리가 멀리 들리고

낮엔 먹을 거리 냄새가 십리를 간다

 

그 콩깻묵 한덩어리를 얻어다 놓고

상화터 큰 저수지

어항 놓으러

모래무지 잡으러 가던 날이 어제 같다

 

어항을 놓으시던 분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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