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

소고기와 표고

guem56 2012. 7. 4. 11:41

여름해는 길고

겨울낮은 짧아서

 

초가지붕에 달린 커다란 고드름이

햇빛에 녹아 물을 떨구다가 한가닥 툭 끊어지기도 하면

해가 안즉 길게 남은 낮이고

 

고드름이 뭔가 반짝여 뵈이고

물고기로 말하자면 기운이 돌 듯 해 보이면

추위가 다시 찾아오는 저녁이다

 

먼산의 눈이 희미해 지면 어둠이 내리고

할아버지는

한참 끓이신 쇠죽을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담아내어 외양간으로 나르셨다

 

소는 여물 내음을 맡고 구유로 성큼 머리를 드밀고

삶은 볏짚이며 옥수수잎을 처음에는 한입크게 집어넣고

느릿느릿 새김질을 했다

 

가마솥아래

아궁지에서

붉고 희고 파르스름한 숯이 불꽃을 다 사를즈음

 

그 숯은 더러 화로 위로 오르고

검은 것은 아궁이 뒤켠으로 물러앉아 후일을 기약했다

 

나는 외양간에 서서 소가 저녁 먹는 모습을 하염없이 구경하다가

 

렘브란트 그림처럼 어둠이 흑빛으로 성성할 때

소의 눈에서 나는 광채만이 번득일 때

소스라치게 놀라 마루건너 방으로 들어와 저녁을 먹었다

 

유치리 사람들은 소를 먹이고 나중에 밥먹는 집이 많았다

 

세월이 가도 소고기를 먹을 때면

그때 소가 밥먹던 그 외양간하며

허연 김을 내뿜는 가마솥하며

손에 잡힐듯 어제 같다

 

2000년이 되기전

내가 매봉산아래 어느 마트에서

한우 고기를 사 본 이래

 

어제 처음 국거리

180그램을 샀다

 

완도 어린 미역 포장된거 1천원짜리

표고 버섯 일곱송이

 

무를 잘게 썰고

물에 불린 미역하며

소살점을 넣어 깊은 밤듕 미역국을 끓이고

 

아침에 청이에게 한그릇 차려주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와 살던 집은

한폭의 그림이었고

나는 닭이 홰를 치는 옆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소를 보며 자랐는데

 

청이는

(한국의 소)란

책갈피를 넘기며

황소를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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