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고래 사냥 허먼 멜빌

guem56 2012. 7. 6. 16:33

더운 여름

풋내가 진동하는 옥수수 대궁을 잘라

그 단물을 먹으면서

 

삶은 옥수수 뜨거워

식던 시간이 천년같은 날

 

옥수수 대와 껍질은 작두쪽으로 가고

누렁이 밥이 된다

 

마루바닥에 배를 깔고

읽은 만화가 흰고래이다

 

얼굴에 머리는 한묶음이고

칼자국인지 줄이 여러개 가서

만화지만 인디언 작살잡이는

참 무서웠고

 

다리를 절둑이며 말이 없는

에이허브 선장 또한 위엄이 넘쳤다

 

송송 벌레에 뚫린 깻닢처럼

그 흰고래 만화는 다달이 오는 잡지가 아니라

한해 열두달 중에 서너달을 띄엄띄엄 본 듯하다

 

흰고래는 과연 잡았을까

왜 그 돈되는 숱한 고래들을 놔두고 흰고래를 그렇게 쫓아갈까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들으면서

늘 흰고래를 생각했다

 

<백경>은 내 머릿속

책의 빚으로 남았다

 

언젠가는 읽는다

 

10년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역시 허먼 멜빌의 빌리 버드를 샀는데

차일피일 읽지 못하고 있다

 

멜빌은

태평양에서 선원생활를 하고 돌아와

30대 초반에 백경을 내놓았다

 

인간은 대개 먹고 자고

돈벌고 집짓고 술마시고 웃다가

더러 화를 내고

동지와 갈라서고

병들고 그러다가 죽는다

 

집념이나 목표를 평생 추구하거나

몇 년간에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목표를 달성하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극이 마이너 그룹에 속한다

 

오랜 세월

회한을 삭이며 절치부심속에서

<사기>를 쓰거나

 

반고처럼

<한서>

사마광처럼 <자치통감>을 만들기는 어렵다

 

소동파나 미불은

재주가 뛰어나 술한잔 마시고

붓을 한번 휘두르면

 

한식시나 초계시가 나오는 줄 알았다

 

미불은 잠들기 전에 왕희지 법첩을 써보고

머리맡에 놓고 아침을 맞았다고 한다

 

추사가 글씨를 얼마나 썼는지 이제 짐작이 간다

그래서 전기(田琦)가 세상을 일찍 떠난 것은 아쉽다

 

30대 초반의 멜빌은

흰고래 추적을 통해서 무슨걸

이 지상에서 찾아보고자 했을까

 

넓고 푸른 바다를 누비고

책속에 흰고래를 헤엄치게 만든 멜빌이

넉넉하지 않은 세상살이

갇힌 도회의 공간에서 좀 답답하지 않았을까

 

임진년

뜬금없이 한국의 어선은 고래들을 앞으로 잡을거다

이런 뉴스를 보고

 

나는 과연

이스마엘과

퀴케크는 배를 무사히 내리고

고향에 갈건가

 

가슴조리던

 

장수하늘소 발에 밟히던

매화마을 속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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