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토종닭의 말로

guem56 2012. 7. 2. 14:25

해변가에서 야구장에서

닭고기 튀김  이젠 치킨이라 우리말화 되었다

 

치킨과 맥주를 먹는걸

치맥이라 하던데

치맥을 생각하면 입맛이 다셔지는데...

 

한적한 시골길 가다 보면

검은 천막 같은게 있고

 

그 안에 더러 병아리들이 촘촘이 엎드려 있다

뛰어다닐만한 공간은 없고

저렇게 좁은 장소에서 가만히 있기도 힘들다 싶은데

 

닭이 되면

그 닭은 평생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짧은 계생(鷄生)을 마치고

 

모래주머니

닭발

닭머리 다 떨어지고

몸통이 삼계탕집으로 가거나

 

더러 닭가슴살이 되어

젊은 사람들의 근육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치킨이 되어 맥주거품과 함께 사람의 목을 넘어간다

 

옛날 유치리

집엔 닭장이 있었고

 

밤나무 그늘아래로 서녘으로 기운 달이 그림자를 떨구는 새벽에

닭은 큰 소리로 울었고

저 안채

그리고 아래쪽 장터

 

개울건너 소란

그 어딘가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숱한 닭들이

소리를 서로 받았다

 

집집마다 닭들은 짚으로 얹은 둥우리안에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나름 시원허게

 

풀과 모래와

지렁이와 온갖 벌레

 

주인집 개구장이 아들을 잘 만나면

봄철엔 올챙이를 포식하며

제 맘대로 자랐고

 

옥수수 가루 타개거나

겨를 털어 거풀이 날리면

할머니들은 체에 남은 곡물가루를 닭장안에 들이밀었다

 

닭은 늘 꼬끼오 울고

철망위 횃대로 올라

양날개 한껏 벌리고 푸드득 날았다

 

이제 닭은 날지 않고

걷지 않고

그냥 하루종일 가만 있다가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

 

세칭 마트에 나온 토종닭도 그리 자유롭게 다니지는 못한다

좀더 너른 공간에서 오래 살 따름이다

 

하여 닭고기 생각이 그닥 나지 않는다

 

토종닭이라 이름 붙어서

그냥 닭보다 두배 비싼 닭한마리를 샀다

 

마가목열매와 뽕나무 말린게 눈에 들어와

그 물로 한참 달여서

살점이 흐물흐물 할때

 

맨손으로 고기는 다 발리고

발린 고기를 오이 얇게 저미고

양파 썰어서 고추장에 무치니

 

세 사람이 먹을만하다

토종닭이라고 해서 그런지 양이 많다

 

남은 기름 국물은 여러 그릇에 나눠

얼음고에 넣으면 두고 두고 음식 밑물로 쓴다

 

닭뼈는 다시 한번 삶아 역시 그 물을 챙겼다

 

항해시대

포루투갈에선

 

떠나는 선원들에게 돼지고기 살점은 다 내주고

남은 사람들이 내장이며 껍질이며 온갖 부속물을 먹었다 한다

 

나는 닭국물을 오다가다 얻어먹으면 그만이다

 

맘껏 날아다니다 세상 떠난 닭고기를 먹으려면

전원으로 가야하나 가기는 힘들다

 

옛날 유치리 집에서 닭을 할아버지께서 잡으시면

우선 삶아서 닭털을 뽑아야 했다

 

닭이 떠난날 뒤

며칠간은

치워도 남은 닭털 몇개가 마당 한켠에서 바람에 뒹굴곤 했다

 

그 시절

한마리 닭을 잡으면

어른들이 여러분인데

 

누군들 닭살점을

양이 차게 먹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때 풋고추며

오이 옥수수는 물리게 먹었다

밭에서 딴 싱싱한 고추를 장에 푹 찍어 먹으려면 역시

여기서 짐을 꾸려 어딘가 시골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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