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몰도바의 푸시킨

guem56 2012. 8. 4. 16:03

올림픽 양궁은

두 사람이 번갈아 활을 쏘고

대기 시간이 거의 없어서

 

경기시간이 화살을 닮았다

시합이 금방 끝나고

잘한다는 사람이 떨어지기도 하여

긴장감은 높은데

 

저렇게 순간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화살이 날려

탈락하니 선수처지에선

지고 나면 허무감 오래 갈거 같다

 

 

몰도바 양궁선수

댄 올라루

 

한국선수 김법민에게 8강전에서 졌는데

96년생 어린 나이라니 나중에 대성할거 같다

 

겨울

이발소 함석지붕아래 고드름이 길고

창옆으로 슬그머니 나온 난로 연통은

검은 그름을 간간히 바람에 토해냈다

 

고무줄이 여닫이를 지탱하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허리가 두터운 난로위

철제 원통 양동이엔 더운 물이 끓고

이발사 아저씨는 연신 비누묻은 솔을 양동에 옆구리에 비벼서

온기를 얻어갔다

 

허리띠보다 두터운 가죽벨트에 날이 파란 면도날을 서너번 치대고 나면

면도칼은 숱한 사람들의 수염을 비누막에 묻혀 대패질하듯이 지워갔다

 

혹시 피는 안나오나

눈을 감고 목을 한껏 젖힌 

손님의 안위를 괘아니 걱정하던 때

 

이발소 벽엔

줄줄이 걸린 수건들 사이로

물레방아 돌아가는 초록 전원 풍경위로

흰 글씨의 글이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눈에 쏙 들어와서 그 한줄이

술한잔 하고 머릿속이 흐릿해지면

문득문득 떠오른지가....어느 세월인지 모른다

 

 

병영

수도물이 나오지 않아

취사반에선 자체 우물을 파서 쓰고

우리는 원미동 뒷산 비가 많이 오면 좀 탁해지는 실개천 물을 늘 마셨는데

페치카 들어선 내무반 구석 책장에

 

겉표지가 부상당한거 포함해 책이 10권은 넘게 있었고

그중 한권이 대위의 딸이었다

 

그 책은 아마 내가 제대하는 날까지 그자리에서 있었을 테고

하도 하릴없는 일요일이 많아서

병사들은 그책을 상당수 읽었을 텐데

 

군대의 기억은

배고픔과

심술궂은 듯 하나 참으로 알고보면 약한 인간성을 지닌

인사계 유상사만이 남아있어

내가 대위의 딸을 읽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치인의 말을 따라하면 기억이 안난다

 

 

1992년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푸시킨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두고 두고 그 기사를 서너번은 보았는데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말라던 푸시킨은

총을 쏘는 결투를 하고 패자가 되어 죽었다

 

 

푸시킨이 죽게 된 사연은 복잡하나

무엇보다 훌륭한 작가가 더 살지 못해서 애석하다

 

푸시킨은 20대 청춘에

이미 러시아 고위층의 미움을 사서

몰도바로 가서 강제 유배생활을 했다

 

몰도바 키시너프(Kishinev)엔

푸시킨 흉상과 기념관이 있다

 

내가 거길 가긴 어렵겠으나

작년 겨울 사둔 <보리스 고두노프>는 언젠가 읽을듯 한데

 

백석이 푸시킨 시를 번역했고

그 시는 이제 구해 볼 수 있다는데

 

나는

아홉살 때

내 꿈이 무언지 그걸 기억하지 못해서

지금 내 나이에 꼭 해야 할 일이 어떤 건지 모른다

 

그리하여

하릴없는 틈에 러시아어를 익힐까 한다

아카시아 꽃이 여러번 피고 지고 나면

 

언젠가 나는 제대한 적이 있듯이

제대하고 한두달은 참 행복했었는데

 

러시아어로 푸시킨 시를 만나면

한두달은 기분이 훨 나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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