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청간정가는 길...

guem56 2012. 8. 3. 18:01

푸른 바다보러

동해의 해안길을 가다 보면

남색에 취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고

 

소나무 언뜻 보이고

그래서 저기 가면 바다가 더 잘 보이겠다 싶어서

들어가보면

 

거기가 청간정

그렇게 두세번은 청간정에 이르렀고

언젠가 거기 현판에 최규하대통령의 글씨를 본 듯 하다

 

올여름 청간정이 낡아서 해체하고

다시 든든하게 올렸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홍경모가 다녀가며 기행글을 남겼다는 사실도 알았다

 

서울 남산아래

100간 넘는 고래등같은 사의당이 홍경모 집이었다는데

 

이계 홍양호의 문집

이계집을 보다가

 

이 글을 산정하고 책으로 낸 사람이 손자 홍경모

이계집 말미에 책을 낸 사정을 적어놓은 발문이 있다

 

이계집 서문은

사고전서 편찬 리더 기윤의 글이다

 

홍양호 기윤은 둘다 1724년 생이다

 

이성비판 3부작을 내놓아

200년 넘게 글 배운 사람들 골머리를 아프게 한다는

칸트

그 역시 1724년생

 

포송령의 요재지이

인연이 있어 짧은 글 몇 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기윤의 열미초당기는 어떤 책인지...

 

살아갈 날은 유수(有數)인데

책을 자꾸 탐하면 무엇하는가?

 

내가 심한 갈등을 느낌은

칸트의 책을 그래도 10분의 1쯤은 읽어야 않겠나

그런 생각이다

 

흰 백묵을 가끔씩 똑 부러뜨리면서

머리칼을 오른편으로 넘기시며

일주일에 1시간 있었던 윤리시간에

 

담임반 없던 방선생님

아마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한해 임시로 오신 기간제 선생님인지

이듬해 봄엔 학교를 떠나셨는데

 

그 선생님은 늘 칸트 이야길

칸트 이름은 녹음기처럼 반복했으나

 

대입에 칸트는 중요하지 않고

윤리시간엔 책상아래서 수학책 보는 학생들도 많아서

집중해서 수업을 받진 않았으나

 

칸트 철학 내용은 날마다

업그레이드가 되어

여름한날 온 교실이 조는듯 마는듯 할새

유독 그시간에 생생히 깨어 있어

 

그때 벌써

내 인생 이코노미에서 피곤하겠다 조짐은 왔었는데..

 

이계집과

열미초당기와

이성비판을 저울질하는 이여름

 

아마 수년 후에도

 내 삶은 여전히

오래된 중앙시장 상가처럼

시들한 채

 

아마도 그 보상기제로

 

나는 또

어느나라 사전을 뒤적일 것이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기억할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한 적 있으나

 

요즘은 그런 생각은 사라져서

마음이 몇 그램쯤은 가볍다

 

청간정에 다시 가게 되면

나도 기행문을 하나 남겨

백타산 석실에 먹물입혀 넣어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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