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보러
동해의 해안길을 가다 보면
남색에 취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고
소나무 언뜻 보이고
그래서 저기 가면 바다가 더 잘 보이겠다 싶어서
들어가보면
거기가 청간정
그렇게 두세번은 청간정에 이르렀고
언젠가 거기 현판에 최규하대통령의 글씨를 본 듯 하다
올여름 청간정이 낡아서 해체하고
다시 든든하게 올렸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홍경모가 다녀가며 기행글을 남겼다는 사실도 알았다
서울 남산아래
100간 넘는 고래등같은 사의당이 홍경모 집이었다는데
이계 홍양호의 문집
이계집을 보다가
이 글을 산정하고 책으로 낸 사람이 손자 홍경모
이계집 말미에 책을 낸 사정을 적어놓은 발문이 있다
이계집 서문은
사고전서 편찬 리더 기윤의 글이다
홍양호 기윤은 둘다 1724년 생이다
이성비판 3부작을 내놓아
200년 넘게 글 배운 사람들 골머리를 아프게 한다는
칸트
그 역시 1724년생
포송령의 요재지이
인연이 있어 짧은 글 몇 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기윤의 열미초당기는 어떤 책인지...
살아갈 날은 유수(有數)인데
책을 자꾸 탐하면 무엇하는가?
내가 심한 갈등을 느낌은
칸트의 책을 그래도 10분의 1쯤은 읽어야 않겠나
그런 생각이다
흰 백묵을 가끔씩 똑 부러뜨리면서
머리칼을 오른편으로 넘기시며
일주일에 1시간 있었던 윤리시간에
담임반 없던 방선생님
아마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한해 임시로 오신 기간제 선생님인지
이듬해 봄엔 학교를 떠나셨는데
그 선생님은 늘 칸트 이야길
칸트 이름은 녹음기처럼 반복했으나
대입에 칸트는 중요하지 않고
윤리시간엔 책상아래서 수학책 보는 학생들도 많아서
집중해서 수업을 받진 않았으나
칸트 철학 내용은 날마다
업그레이드가 되어
여름한날 온 교실이 조는듯 마는듯 할새
유독 그시간에 생생히 깨어 있어
그때 벌써
내 인생 이코노미에서 피곤하겠다 조짐은 왔었는데..
이계집과
열미초당기와
이성비판을 저울질하는 이여름
아마 수년 후에도
내 삶은 여전히
오래된 중앙시장 상가처럼
시들한 채
아마도 그 보상기제로
나는 또
어느나라 사전을 뒤적일 것이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기억할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한 적 있으나
요즘은 그런 생각은 사라져서
마음이 몇 그램쯤은 가볍다
청간정에 다시 가게 되면
나도 기행문을 하나 남겨
백타산 석실에 먹물입혀 넣어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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