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광해와 백사 이항복 소양강

guem56 2012. 10. 11. 15:38

금은산 쪽

저수지 아래로

벼가 익어 황금빛이 출렁이면

 

논엔 허수아비가 들어서고

아이들은 낱알을 떨군다고 어른들이 쫓아내지만

서리가 내리기 전에 부지런히 메뚜기를 잡는다

 

그때 백사 이항복에 관한 이야길 들었고

담임이신 이경복선생님은 배구코치 하시느라 교실을 자주 비워서

책은 아이들끼리 읽은 듯하다

 

세월이 오래 되어 그 책이 국어책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궁금했던 것은

대장간에서 못을 주워오던 항복이 어느날 벌건 못을 깔고 앉아

불에 데었다는데

 

어린 나는 왜 못을 깔고 앉았는지 항복이의 심리를 짐작하질 못하고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

 

오성과 한음이란 소년월간지 만화를 보면서

백사와 오성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도 의문이었는데

 

중학교때인지 역시 국어교과서에서

백사의 시조를 만났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난 저구름아.....>

 

폐서인이 된 영창대군은 이미 죽었고

선조의 비요 광해의 모친이 되는 인목대비를 폐하는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울때

 

백사는

폐모불가론을 내세우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철령고개를 넘어 먼 북방으로 귀양을 간다

 

무오년(1618년) 추운 정월이었고

한해 전인가 젊은 선비 윤선도가

 

역시 인목대비 폐비건으로 귀양을 가던

길을 따라

환갑이 넘은 백사는 죽을 생각을 해서 수의를 갖추고 그 길을 넘고

윤선도 자던 주막에서 밤을 맞으며 시를 남긴다

 

오월이 되어

북방의 객지에서 백사는 죽고

그 해 여름엔 허균도 죽는다

 

백사는 율곡의 천거를 받았고

영호남의 선비 천여명이 연루된 기축옥사에서 송강 정철의 라인에 서게 되고

 

이는 남명 문하의 의병장 정인홍과 나중에 반목하는 계기가 된다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고

선조가 부랴부랴 서울을 떠날 때 백사는 어가의 앞뒤에서 선조를 보필하고

전쟁의 혼란을 수습하는데 공이 컸으며

광해군 재임시엔 역시 국정의 난맥을 바로잡는데 힘을 썼으나

 

신흥 만주의 후금의 압박과

국론의 분열로 사세는 어그러져

 

허균은 역적의 죄로 죽었으며

 

광해의 폐비살제의 패륜엔

반대를 분명히 한 정인홍도 인조반정후 바로 처형되었다

 

 

광해 시절은

두고 두고 역사의 거울이 되는 시기여서

21세기 한국이 나갈 길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광해의 성정은 어떠했으며

한 충신이 있으매도 서로 대립이 많았다

난세는 병자호란의 망국으로 이어졌다

왜 그랬을까?

 

 

영화 <광해>는 두고 두고

속편이 나와도 되고 그래야 한다

 

 

백사 이항복은 춘천을 다녀갔다

의암댐이 막아서 물이 찬 의암호 가운데엔 중도가 있고

거기 얕은 고산(부래산)이 있다

 

전설엔 장마에 물살에 떠내려왔다고 하여 부래란 이름이 생겼다 한다

백사가 남긴 시문은 다음과 같다

 

만년의 계획은 소양강 아래 와서 / 晩計昭陽下

그대와 함께 한 낚대에 늙는 거로세 / 同君老一竿

생업이 빈한함은 걱정하지 말라 / 勿憂生事薄

본디 부래산이 있지를 않는가 / 自有浮來山

 

 

남녀가 말을 잘탄다는 북지에서

백사는 죽었는데(백사는 귀양지에서 말을 타는 기녀를 보고 시를 남긴다)

 

그가 평소 귀거래해서 살고 싶다던

춘천 소양강

 

나는

소양강을 매일 보고 살아도 마음이 한가하지 않다

 

산천과 강물은 의구한데

사람의 마음과 처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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