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스테판 쯔바이크의 여행

guem56 2012. 10. 12. 15:59

1942년 2월 15일

싱가포르를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8만여명의 영국 인도군 포로가 잡혔다

이들이 역사상에선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강제 노역을 치르다가

역시 많이 희생되었다

 

그해 2월

매화산 아래 1938년에 왜인들이 세웠다는 매화소학교 교정에선 황국의 용감한 군인들이 미영의 축귀를 몰아낸 기념식이 열렸을 것이다

너른들 뒤쪽 디딜방앗집 재숙이 아버지는 소학교 시절에 황태자 탄신일인지 싱가포르 함락일인지 그걸 기념해서 마분지 공책을 선물을 받은 일을 21세기 넘어서 기억했다

 

모윤숙은 그날의 감격을 이렇게 노래했다

 

2월 15일 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

거리엔 전승의 축배가 넘치는 이 밤

환호소리 음악소리 천지를 흔든다

......

길이길이 행복되라

길이길이 잘살아라

 

 

소남도는 일본인들이 싱가포르를 부르는 이름이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서화가 제백석

그를 베이징으로 뫼셔온 당대의 화가 서비홍은

1940년대 싱가포르에서 그림을 그렸고

일본군 침략이 코앞에 닥치자 1천점이 넘는 그림을 옮겼다

 

역사는 그렇다

모윤숙도 죽어서 당시 저런 시를 절절한 충정심에서 썼는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신문사에 넘겼는지 알아 볼수 없으나

모윤숙이 채 10년도 되지 않아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시를 남긴 것을 보면

착잡함보다 뒤틀린 웃음이 나온다

 

싱가포르 함락은

가뜩이나 암울한 유럽 아시아의 거대한 전쟁판에 먹구름을 잔뜩 뿌렸다

 

42년 2월 22일

지구를 반바퀴 돌아

브라질 리우 근처 페트로폴리스에 망명살이 살러 간

 

유태계 작가 스테판 쯔바이크는 자살했다

 

가끔씩 신문이며 잡지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는데

아마 싱가포르 함락 소식을 듣고 자살한 정황이 맞는거 같다

 

매산학교를 다닐 적에

아니면 화양강이 흐르는 홍천읍인지

개나리가 늘 만발하던 봄내인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나

어느 소년 월간지 만화엔

그림이 눈에 낯선 <베르사이유의 장미>란 만화가 있었고

여자애들이 열광해서 보았던거 같은데

나는 만화 속 화자의 말투나 그림에 워낙 이질감이 많아서 잘 안읽었으나

거기 나오는 주인공 오스칼의 깊은 고뇌는 만화속이지만 오래 오래 살아있었다

 

쯔바이크가

마리 앙뚜와네트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를 썼으며

베르사이유 장미는 쯔바이크 책을 일본인 만화가가 만화로 옮겼다는 사실을

올 가을에 인테넷 블로그를 통해 알았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에 관한 전기도 쯔바이크가 썼으며

그가 전기 소설 극작등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고

로맹 롤랑이나 프로이드와도 친밀한 사이였던 것도 이제 알았다

 

어느 바람 불던 쓸쓸한 가을날

발터 벤야민과 스테판 쯔바이크가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자살했다는

도서관 잡지의 한구절을 보고 우울했었는데

 

 

세월이 허락하면

나는 이제 머리가 아파서 벤야민 책은 포기할 테지만

쯔바이크의 책 <Le Voyage dans le passe>는 읽어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