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증조할아버지의 골패

guem56 2012. 12. 13. 13:22

멀리 큰 저수지와

그 위 금은산의 황새가

흰 날개를 펄럭이던 때

 

왼편 울타리 밖에 무궁화 한그루

담장안 포도넝쿨을 앞에 두고

 

진주할아버지 방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님

 

나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진주할아버지의 진주가 증조의 변형임을 알았다

 

날이 하염없이 긴 여름날

매화학교 입학 전이었다

 

점심상은

둥그런 소반에

할아버지와 증손자가 겸상을 했다

 

그릇에 담긴 깍두기

할아버지는 손칼을 꺼내셔

그 깍두기를 잘게 사등분하셨다

어린애가 먹기엔 크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봄 가을이면

울타리 담 너머로

허연 두루마기와 갓을 쓰신

할아버지들께서 너댓분 서 계신 날이 많았다

 

골패를 노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노인분들은 인사말은 적어도 인사하는 시간이 길어서

그렇게 소나무밭에 앉은 황새마냥

가벼운 미동으로 한참을 서서 손짓을 하시다

헤어지시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방엔

군용담요 위에

흰 뼈조각 같은 골패가

 

붉은 칠

검은 칠한 부분이 한두개 서너개 파인

모습으로 이리저리 누워 있었고

 

손님을 배웅하신 할아버지는

골패 하나 잊어먹으면 안된다 하시며

금실이 빛 바랜

주머니에 골패를 담으셨다

 

그 골패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종적을 모른다

 

<인간극장>프로그램에

100세가 넘으신

예천의 손악이 할아버지께서 나오셔서

방송을 보다가

 

진주할아버지와 골패

그리고 할아버지가 혼자 계실 때

돌추를 느릿 느릿 넘겨가시며 짜시던

댓자리는 아니고

<지직>이라고 들었는데

 

여름날 방바닥이나 마루에 깔던 그

갈색 자리를

그위에 앉거나 누운 듯이

머리에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