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큰 저수지와
그 위 금은산의 황새가
흰 날개를 펄럭이던 때
왼편 울타리 밖에 무궁화 한그루
담장안 포도넝쿨을 앞에 두고
진주할아버지 방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님
나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진주할아버지의 진주가 증조의 변형임을 알았다
날이 하염없이 긴 여름날
매화학교 입학 전이었다
점심상은
둥그런 소반에
할아버지와 증손자가 겸상을 했다
그릇에 담긴 깍두기
할아버지는 손칼을 꺼내셔
그 깍두기를 잘게 사등분하셨다
어린애가 먹기엔 크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봄 가을이면
울타리 담 너머로
허연 두루마기와 갓을 쓰신
할아버지들께서 너댓분 서 계신 날이 많았다
골패를 노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노인분들은 인사말은 적어도 인사하는 시간이 길어서
그렇게 소나무밭에 앉은 황새마냥
가벼운 미동으로 한참을 서서 손짓을 하시다
헤어지시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방엔
군용담요 위에
흰 뼈조각 같은 골패가
붉은 칠
검은 칠한 부분이 한두개 서너개 파인
모습으로 이리저리 누워 있었고
손님을 배웅하신 할아버지는
골패 하나 잊어먹으면 안된다 하시며
금실이 빛 바랜
주머니에 골패를 담으셨다
그 골패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종적을 모른다
<인간극장>프로그램에
100세가 넘으신
예천의 손악이 할아버지께서 나오셔서
방송을 보다가
진주할아버지와 골패
그리고 할아버지가 혼자 계실 때
돌추를 느릿 느릿 넘겨가시며 짜시던
댓자리는 아니고
<지직>이라고 들었는데
여름날 방바닥이나 마루에 깔던 그
갈색 자리를
그위에 앉거나 누운 듯이
머리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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