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등석여와 포세신은
평생 단 한번 만나 몇날을 같이 지낸 듯 한데
그러고나서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고 하던데
팔대산인(1626~1705)과
석도(1642~1707)는
평생 만나지 못했으나
두 사람이 함께 그린 난죽도를 남겼다
난죽도는 청나라 황실 서화로 수장되었으나
청나라가 망해가면서 해외로 유출되었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서 현재는
광저우 박물관에 있다
팔대산인은
명나라 황실의 후손으로 명나라가 망하자
한탄과 울분
그리고 억압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불문에 귀의했다
전란의 와중에 부친이 돌아가신
석도는 어린 나이에 절에 들어갔으므로
주관적인 의지라기 보다는 어린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살아남은 어른들의 뜻에
절사람이 된 듯 하다
석도는 양저우에서 살았고
팔대산인은 등왕각이 있는 난창에 머물렀으나
서신을 교환했고
팔대산인이 74세에 난을 그려
석도에게 보냈다
석도는
그 그림에 대나무를 그려넣어
두 사람 합작의 난죽도가 탄생했다
난죽도엔 두 사람이 함께 그렸다는 글씨가 있으며
그림은 상중하 삼단으로 되어
머리부분이 더 크고 아래가 작은 기울어가는 큰 바위가 중간 부분이고
아래엔 난초가 자라며
바위 위쪽으론 대나무가 하늘 높은데
눈이 높은 사람들에겐
난죽의 조화가 절묘해 보이는가 보다
세상은 넓고
난은 천지 사방에 피어서 사람을 기다리나니
광저우에 가서 언제나
딤섬을 먹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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