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김경서 영화 광해

guem56 2013. 1. 30. 13:54

영화 광해를 보면

허균은 왕의 지근거리에 있는 충신이고

 

광해는 현명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다

 

허균은 무오년 여름에 처형당하고

교산의 죽음 전후로 만주(건주 建州라고 부른다)엔

누르하치 세력이 강대해져서

 

명나라는 조선에 원군을 청한다

조선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강홍립을 대장으로 삼고

 

이듬해 기미년(삼일 운동 꼭 3백년 전이다)

음력이월이니 양력 삼월쯤 되겠다

 

조선파병군은 압록강을 넘어 고구려 땅으로 들어간다

 

명나라의 4개 부대에 이르는 원정대는 차례차례 누루하치 군에게 완패하고

강홍립 지휘의 조선군과 합류한 유정의 부대도 매복에 걸려 지리멸렬되고

조선군은 여진에게 항복한다

 

명나라 장수 이여백은 한때 평양성 전투에서

왜군이 성위에서 조총을 쏘아댈 때

성아래에서 방패를 들고 싸움을 독려했다는 명장이며

이여송의 아우인데 허무하게 죽었고

 

유정 또한 임란때 이순신 장군과도 같이 전투했던 용장이나

전사했다

 

조선군의 부사령관은

김경서(1564~1624  景瑞)이다

초명은 응서(應瑞)김응서라 하기도 한다

 

 

김응서 장군과 함께 거론되는 이름이 평양기생 계월향이다

김응서는 계월향의 도움으로 평양성에 잠입하여 적장의 목을 딴다

 

홍양호의 이계집엔 <부원수김장군경서전>이란 글이 있고

김경서의 활약이 소상하게 적혀있다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원정군의 주력은 보병이나

조선군은 총을 쏘는 조총부대가 있었다

 

임란때 왜군이었던 사야가라는 사람이 조선에 귀화하여 조선군으로 편입되어

거꾸로 왜군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웠다

 

그는 김충선이란 이름으로 남았으며

김충선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조총술을 전수하여 조선의 국방력 향상에 힘썼다

 

홍양호의 기록에 따르면 사야가는

김경서 장군의 용맹함과 기개에 감복하여 항복하고 귀화했다고 적혀있다

 

강홍립은

기개가 강한 김경서를 크게 경계하였다

사실상 군사지휘권을 빼앗고

여진과 전투시에 나서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항복하고 나서 김경서를 감시하고

그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가지고 여전히 만주의 여진에게 설원하려는 뜻을 굽히지 않자

 

김경서를 나쁘게 참훼하여 죽게 만들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다른 기록엔

김경서가 탈출하여 귀국하려 하다 발각되어 죽었다고 한다

 

김경서는 1624년 만 5년 이상의 포로 생활끝에 처형되었고

만주족은 그의 사체를 태자하 강가에 묻었다고 한다

 

경서의 아들 득진(得振) 또한 무장이다

부친의 죽음을 늘 원통해하다가

어느 때 평안도 자산의 수령이 되었다

 

청나라 사신이 조선에 외교업무로 오는 광경을 목도하고

분하고 억울하여 피를 토하고 죽었다

 

홍양호는 강홍립을 내리깍고

김경서의 충절을 높이 기렸다

 

역사는 그 당시에도 헷갈리고

세월이 흘러도 불분명한 대목이 많다

 

그런데 병자호란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영화 <광해>를 보아야 하고

또한 그 이면도 더 많이 자세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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