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건물이 지워지고
길이 다른 곳으로 나며
사람들은 떠난다
탈렌트 원미경이 살았다는 동네
춘천 시청근처
지금은 시청부지가 되어버린
녹십자 병원 그리고
고갯길 건너 제일병원인가
또다른 병원이 있었다
거기서 2백미터쯤 올라가면
백합여고가 있었다
병원지하에
붓글씨를 쓰는
난정서루가 있었다
여름날엔 서늘해서 좋았으나
겨울엔 추웠다
세상은 시끄러워서
도심에선 최류탄이 터지고
전경은 커다란 방패를 들고 거리에 서 있었다
사북이나 광주가 신문에 오르내리고
대통령은 하야 했다
그러던 때
지하에서 여름이나 겨울이나
시도 때도 없이 현비탑비를
화선지 위에 써본 때가 있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도시락 하나를 까먹고
신문 몇 개를 읽다보니
나는 뜬금없이
중국 섬서성 서안에 와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던 날
가이드는 일행을 비림이란 곳으로 데려갔고
사진을 찍느라 바쁜 관광객 틈에서...
안진경 마고산선단기인지
다보탑비인지 눈에 익은 글씨를 보다가
현비탑비를 만났다
제대한지 오래된 병영의 유허
폐교된 초등학교
빛바랜 앨범에서
젊은 날의 모습으로 웃으시는 외삼촌의 사진
갑자기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비림을 한번쯤은 와야 할거 같아서
그리고 먹을 갈아
글씨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