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청춘불패 불패는 끝나고

guem56 2010. 5. 12. 22:54

유치리 어린이들의 학당

앞에는 금은산 뒤에는 매화산

그 사이 매산국민학교(당시는 초등학교라 부르지 않았다)

 

김신조 간첩이 청와대를 폭파하러 내려온지 얼마 안되던 시절

예비군이 창설되어 집집마다 나무로 깍은 M1총 비슷한 총이

지게작대기와 나란히 있던 그 옛날

 

매산학교에는 전설의 배구부가 있었다

코치는 이경복 선생님 나의 초등 2학년 담임선생님이시다

 

매산학교 배구부는 8년패라 불렸다

어린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나중에 알았다

배구를 잘해서 홍천군에서 8년을 줄줄이 쓸었단 이야기다

 

어느해 봄이 지난 시절

11사단 혹은 화랑부대 별호는 젓가락 사단이었다

11자가 젓가락 비슷했고

행군을 많이 해서 지구를 반바퀴 돌아야 사병이 제대한다는

전설의 부대이다

 

21세기에 기계화가 되어 이제는 더 이상 걷지 않는다는 부대다

 

어느날 홍천읍에서 배구시합이 열렸다

부대의 제무시(GM)트럭이 학교 마당에 들어섰고'

나는 어느 어른의 등을 기대 간신히 트럭에 올라

손잡이도 못잡고

사람들 틈에 끼어 홍천초등학교 배구장으로 배달이 되었다

 

매산학교 배구부는 봄여름내내

미루나무가 하늘끝까지 올라 매미 소리 우렁찬 그늘아래

운동장 한켠에서 늘 11사단 시동주둔 부대 군인아저씨들과

연습게임이 있었다

 

이름은 엄종태라 했고 난토골에 사는 고학년 학생이 있었다

스파이크를 하면 공중에 부웅 떠서 무릎이 90도로 차악 꺽이며

커다란 군인아저씨의 양손을 비켜 공을 내려 꽂았다

 

아무도 막지 못했으며

수비가 되면 뿌라킹(blocking)이 기가 막혔다

군인아저씨를 혀를 내두르며 맥없이 공을 받다가 쓰러지거나

공을 때리다가 막혔다

 

엄종태가 뜨면 눈이 갈기로 찢어지며 흰자위가 밤송이만큼 커졌고

하늘을 날아 떨어지는 순간에는 화이팅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트럭을 타고 난생 처음가는 대처의 홍천읍 홍천초등학교 시합장엔

그가 없었다

 

작년에 졸업을 했던 것이다

 

홍천학교는 밴드부가 있었다

난생 처음 스타킹을 신고 유럽병정처럼 솔을 단 막대를 휘두르며

어린이 지휘자가 관현악 밴드를 울렸고

커다란 북소리 속에서

매산학교 배구부는 무너져 내렸다

 

어른들은 매산 선수들이 바짝 얼었다고 했다

여름에 어찌 사람이 어는가???

나중에 나는 그것이 기가 눌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고

밤이 깊어 학교 운동장 그늘에서

술에 취해 벌건 눈으로 하염없이 검은 하늘을 바라보는

이경복 선생님을 위로하는 어른들의 두런두런 말소리를 들으며

나는 집으로 갔다

 

눈물이 한없이 흘렀고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잔인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리하여 어른이 되어도 나는 스포츠를 잘 안본다

깊은 열등감이 각인되었고

더 큰 학교와 도회지를 미워하는 촌놈 기질이 염색체에 깊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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