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대장간 그 버얼건 불빛

guem56 2010. 5. 28. 17:06

오랜 기억의 저편이라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그 어린 나이에 뭘 하고 하루를 지냈을까마는

 

어렴풋이

살구꽃 피고 지던 시절에...우리집 뒤뜰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다

낮에 땅땅하고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났었다

 

오락이나 레저라곤 없던 유치리라..

그 소리를 듣고 저절로 따라가 보면

 

매산초등하교에서 북서쪽 10시 방향에

대장간이 있었다

 

명중이 할아버지가 CEO겸 대장장이 역할을 하는 1인대장간이었다

 

어느 골에서 오셨는지 그 할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의 허연 수염을 갖춘 할아버지들이

낮과 호미를 별러 가져가시는 것이었다

 

아마 이날이 아래 1키로 떨어진 시동장날이었으리라

장보러 오신 분들이 걸음품을 늘려 이곳을 들려가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몰려들면

용사식(이분의 함자)할아버지는 가끔 눈을 부라리시며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모루에서 끊어져 튀어나오는 빨간 쇳날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풍구에서 쇠를 달궈

손님으로 온 할아버지들이 모루에서 그 쇠를 눌러주면

쇠망치로 때려서 쇠를 펴고 구부리고 물에 담그고 다시 불에 넣고

 

이런 일을 반복하셨다

 

우리는 벌건 쇠가 물에 들어갈 때 쉬익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는 그 광경을 보고

할아버지들이 다 물러나신 한참 후에도 뜨끈한 그 물에 손을 담가보고 놀았다

 

세월이 가면서 마을 사람들이 읍내 장에 나가 만들어진 조선낫과 왜낫을 들고 다니면서

대장간은 일하는 날이 점점 줄었고

사식이 할아버님의 기운이 빠져감도 한몫하여

언제부턴가 풍구에서 불이 삭았다

 

그렇게 유치리의 유치리 제철이 역사로 사라져갔다

세월이 흐른뒤 나는 그 대장간 근처에 한참을 앉아 있던 적이 있었다

 

어느 해 여름

명중이 집에 놀러갔다가

 

집안 사람들이 다 농사일 가고

텅 빈 고요속에

 

모기장을 치고 낮잠을 주무시던 용할어버지가

느릿느릿 일어나셔서

 

윗목에 놓인 소주병을 열고 한 잔을 커억 마시고는

마늘 한쪽을 된장에 찍어 드시더니 다시 낮잠으로 들어가실 새

그 화악 풍기던 소주 술냄새와 마늘 냄새가

수십년을 건너 대장간의 벌건 불빛과 함께 더러더러

오감속에 생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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