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

거진 명태

guem56 2013. 6. 10. 15:53

겨울이면 가까운 산에

눈이 덮이던 날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털장갑에 실이 풀린 채

팽이채 만들 닥나무 껍집을

할아버지 주머니칼로 다듬었다

 

매운 바람 따라

장이 서면

트럭을 타고온 꽁꽁 언 동태인지 명태가

지겟목에 매달려

흰연기 피어오르는 굴뚝을 찾아 골짜기로 잦아들고

김이 무럭무럭나는 탕국이 되었다

 

설악산 용대리

겨울 찬물엔 손을 담그기도 어렵던데

얼음조각을 햇볕에 녹이고 다시 저녁이 되면 꽁꽁 얼던 명태는

이듬해 황태가 되었다

 

20년전만 해도 명태는 겨울에

많이 잡혀서

내륙의 생선전에 가면 말간 눈을 꿈벅인 채

나무상자에 누워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스티로폼이 나무를 대신하면서부터인가

거진 간성 앞바다에 명태가 뜸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속초 강릉의 아녀자들이

명태를 고무대야로 가득 가져다

슬금슬금 칼하나 들고 헤쳐내면

창란 명란 아가미 서더리가 다 그릇그릇 옮겨앉았고

명태는 허연 무와 함께 가마솥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 어쩌다 알탕을 만나면

그 알들은 먼 북양의 바다에서 어느나라 배가 잡았는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해체된지도 모르고 그저 국적은 러시아 미국으로 되어 있고

얼었던 걸 제대로 안녹여 그런지 혀끝에 매우 이국적으로 닿는다

 

창란 명란이 다 빠진 코다리를 보노라면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명태를 잘 다듬으시던

고모님도 이모님도 이젠

밥하시기도 힘들 만큼 기력이 쇠하셨다

 

............................................

 

대서양 북양

노르웨이

 

100년 넘게 고래를 잡던

포구에선 더 이상 고래 잡는 젊은 선원이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저절로 고래잡이를 퇴직하면

바다의 고래는 사람에게 잡힐 일이 없을 듯 하다

 

연안의 고래는 수가 늘어서

해마다 수천마리를 잡아도 될 듯 하다던데

 

고래가 사라지는게 아니라

고래 잡는 사람이 먼저 제풀에 사라진다 한다

 

고래고기가 고급요리도 아니고

딱히 고래가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니라

힘든 일을 애써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멜빌이 태평양에서 고래잡이 배 선원을 할 때는

고래가 로또였을거 같다

 

세월이 흐르면

반짝이는게 그때 그때 달라지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금을 찾는건 금은 그래도 믿을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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