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蘇東坡)

과령(過嶺)

guem56 2013. 7. 1. 15:27

 소동파는 1094년 장돈의 미움을 받아

남쪽 혜주로 귀양을 갔다

기후도 온난하고 음식이 풍부한 혜주 생활이 그런대로 잘 풀리자

장돈은

다시 소동파의 유배지를 해남도로 옮겨버린다

 

7년여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마침내 해배되어 소동파는 강남땅을 밟는다

 

1101년 7월 소동파는 미불을 만나고 난 보름쯤 뒤에 서거한다

 

사후 숱한 조사가 날아들었는데 이치(李廌)는 이런 글을 남겼다

 

都大不容 才高爲累

(도가 높아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재주가 뛰어나 이것이 루가 되었다)

 

만고의 충신이요

경학과 치세 시서화 의학 두루두루 조예가 있던 소동파는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과령>은 그가 죽기 전에 강남에 와서 어느 고개를 넘으며 지은 만년작이다

동파의 전기와 행장이 여러 종류다

더 자세히 알면 해배지에서 강소성으로 오기까지의 행로가 나올 것이다

 

 

   過嶺

 

七年來往我何堪

又試曹溪一勺甘

칠년세월 내가 어떻게 살았던가

다시 조계의 물을 맛보누나

 

 

夢裏似曾遷海外

醉中不覺到江南

일찍이 꿈속에서 바다건너로 유배된 듯 하더니

취중에 나도 모르게 강남에 왔구나

 

 

波生濯足鳴空澗

霧繞征衣滴翠嵐

잔물결에 발을 씻고

안개에 둘러쌓여 서늘한 바람에 젖네

 

 

誰遣山鷄忽驚起

半岩花雨落毿毿

놀란 산새 날라가고

큰 바위에 꽃비 흩날린다네

 

 

초서의 교본이 되고 정조 이산이 즐겨 읽었다는

구소서간집에 보면 소동파가 해남에서 죽을 시에 객지에 무덤을 만들라는 내용의 글을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다

 

편지글의 내용은 처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과령>의 내용은

해배되어 일가친척을 찾아 강소성 태호 근처 살 자리로 오는

소동파의 심정이 자연물에 의탁하여 달관한 듯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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