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권진규

guem56 2013. 9. 2. 10:53

봉의초등학교 화단엔 봄에 개나리가 만발했다

운교동 로터리에서 내달리는 차에 어린이가 다치는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육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서 육교 기공식이 열렸던지 그 무렵

학교의 남서쪽 담장아래엔 약사리고개로 흘러서 공지천으로 가는 시내가 있었다

 

시냇물은 아주 지저분했으나 여름 겨울 쉬지 않고 졸졸 흐르고 물의 양도 어느 정도 많았다

그 약사천이 복개되어 풍물시장이 열리더니

어느날 다시 복원이 된다고 공사가 한창인데 세월 삼십년이 흘렀다

 

약사리 고개 위로 올라가면

북쪽 봉의산 쪽엔 죽림동 성당이 고색창현하고

남녘 공지천 쪽엔 흰색으로 칠한 망대가 있었다

 

시내를 굽어보는 언덕에서 화재진압을 위해 세웠는지

언제부턴가 흰 건물이 있었다

미군부대 앞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러 약사리 고개를 삼년을 넘었다

밤 11시 30 사이렌이 울리면 학교 교실에서 도시락을 두 개 먹고

통금에 밀려 깊은 어둠속 걸어다니던 때가 꿈같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선생이 세상을 떠난 때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이전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영어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건물은 휴전되고 미군이 지어준 거다

하도 단단한 시멘트로 지어서 부스러기 하나 흘러내리는 일이 없다

 

약사리 고개 우정선생님 댁에서 가서 몇 번 차를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는 벌써

고등학교 교사를 새로 지은 때다.

교실이 좁아선지 새로 지은 교사는 교실 공간이 넉넉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권진규가 춘천에서 중학교(그때는 중학교 6년 과정이었다)를 다니던 때는 1940년대 전후였다

1938년 17세의 나이로 춘천 공립중학교에 입학해서

1943년 15회로 졸업을 하였다

 

일본에 건너가 조각을 배우고

귀국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권진규는  73년 유서 2통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고독과 가난 속에서 강한 자부심으로 살다가 세상을 등진 듯 하다

 

터에 인연이 있는지는 모르나

권진규가 다녔던 춘천중학교 자리는

월남이 망하던 때 내가 다니던 학교 터와 같은 곳인지

 아직 확인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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