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황금시대 샤오홍

guem56 2014. 10. 26. 21:18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던데

사람들은 때때로 헛바람이 들어

물리적인 법칙을 거스른다

 

물론 이러한 행로에는

삶이 고단해서

먹고 사는 일이 어차피 고단하니

 

짧은 삶에서

먼하늘의 별을 바라보거나

떨어지는

봄의 꽃

가을의 낙엽에 취해

엉뚱하게 원고지에 뭔가를 끄적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저절로 하는 엉뚱한 인간들이 돌연변이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고구려땅이기도 하고

발해의 흔적이 있다는 하얼빈 근처

후란에 샤오홍이란 어린 여자애가 자랐다

 

할아버지의 보살핌속에서

열살까지는 모든게 행복했다

 

영화 황금시대는 이렇게 시작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사랑이 어긋나 집을 나온 샤오홍은

먹고 사는게 갑자기 그늘이 되었다

 

허름한 객잔에서

팔려갈 위기에 처한 샤오홍은

지역 신문사에 글을 보내고

운명처럼 샤오준을 만난다

 

북경 상해를 거쳐

문명(文名)은 얻었으나

일본순사들과 국민당의 추적에 시달리면서

샤오홍과 샤오준은

루쉰선생을 만난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일본을 다녀오고

 

삶이 어느시대나 그러하듯

사랑과 의리로 결합된 샤오준과도 끊임없는 갈등을 겪으면서

그들은 황화가 펀강과 만나는 림펀으로 가고

다시 헤어지는 와중에 서안을 거친다

 

서안의 비림에서

샤오홍은 다시 두완무를 만나고

양쯔강의 우한으로 내려왔다가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충칭을 거친다

 

만약 샤오홍이 쓰촨으로 들어가 머물렀다면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홍콩으로 내려온

샤오홍은 건강이 악화되고

마침 홍콩은 일본군의 점령지가 되며

병원에서 수술은 했으나

후속 요양이 부실하다보니 사망하게 된다

 

이 영화는

탕웨이가 한국감독과 결혼한 바로 다음에 개봉이 되었고

관객들에게 보아달라고 러브콜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10만이 아니라 1만 언저리의 관객이 들어

한국 흥행은 완전히 실패했다

 

거의 세시간 짜리 영화였으며

템포가 아주 느린 영화였다

 

나는 관객이 텅빈 자리에서

새벽 두시 반이 되어 영화관을 나왔다

 

그러나

하얼빈의 겨울

20세기 초 어디나 그러했듯이

굶다가 음식을 뱃속에 넣어야 하는  서민들

 

그리고 서안의 황량한 골목

우한의 양즈강 뱃길을 보면서

 

이역만리지만

아마 그 시대에는 우리땅도 그러했으리라

고단한 민초들의 삶과

그런 와중에 글을 붙들고 앉아서

호롱불에 잉크를 찍어 원고지를 메우는 문인들을 숱하게 만나서

참으로 행복했다

 

굶기를 밥먹듯 하고

폭탄이 우수수 떨어지며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떠서 살아가던 그 시대를

영화는 황금시대라 불렀다

 

늘 라면을 먹으면서

수시로 우편함이나 메일로 날라오는 고지서를 처리하면서

일상에 지친 나의 삶은

샤오홍이 본다면 사치중의 사치였다

 

삶은 확실히

얼마나 남아있는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의 양보다는

살아가는 사람이 밀도를 가지고 임하는

시간의 질이 중요할 수 있다

 

내일 아침 해가 뜬다면

내가 원고지가 아니라도

허연 백지를 앞에 두고

볼펜을 눌러 글씨를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먼훗날

누군가 그 어느 땅에서

 

내가 살았던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 불러줄지 어떻게 알겠는가

 

슬퍼하고

찡그리고 사는데 나는 지쳤다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덮히고

다시 먼산에 진달래가 피었을 때

오늘 밤처럼

샤오홍을 기억하고

 

나도

내가 살았던 후란강의 이야기를 적어야겠다

 

밤은 깊어가고

오늘밤은 한 잔 술에 자고 봐야한다

 

갑오년 가을밤

동서남북 수만리를 떠돌던 샤오홍을 기억하며

 

고려 飛雪 記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니스 엔드  (0) 2018.12.05
악녀 김옥빈  (0) 2017.06.19
하정우 더 테러 라이브  (0) 2013.08.05
고아성 설국열차  (0) 2013.08.05
브래드 피트 월드워z  (0) 2013.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