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국가부도의 날

guem56 2018. 12. 20. 17:52

날씨가 사람 웅크리게 만드는 건 꼭 온도 때문이라기 보다는

낮에 햇살 적고 우중충하고 습기 차면

밤에도 뭔가 살과 뼈에 차갑고 음산한 기운이 더 도는지

아무튼 이런 날 저녁에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보았다

 

내가 가는 영화관은 엘리베이터가 늘 어딘가 고장이 나서 멈춰 서있고

상영관 안은 포근하고 아늑하기 보단 약간 춥다

 

신라의 달밤이나 타짜에 나왔던 김혜수가

여기선 한국은행에서 금리와 외환을 관리하는 역으로 나왔고

유아인은 머리 회전이 빠르나

혈액형은 악어과로 나라나 백성들이 굶어 죽든 말든

내 돈 챙기는 속물로 나왔다

 

허준호는 구제금융 여파로 궁지에 몰린

그릇 만드는 공장 사장으로 나왔다

 

조우진이란 배우가 있다

IMF협상을 적극 추진하고

미국사람이 어떤 조건을 걸어도 넙죽넙죽 받아먹는

재정담당 차관으로 나왔다

 

이 영화가

얼마나 1997년 겨울의 실제 한국상황과 비슷한지는 모르지만

영화 보면서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배우 조우진의 실제 인간성이 어떤지는 모르나

영화 속에서 분노유발자로선 대단히 유능했다

 

황정민이 주연한 <공작>이란 영화가 있다

공작과 국가부도는 같은 시대

1997년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97년 대선 전후 김영삼과 김대중의

대통령 교체기에 한국은 참으로 높은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삼시세끼 꾸역꾸역 먹고 살았으니

바보가 따로 없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대다수가 고통을 받지만

없는 사람은 더러 죽기도 하고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있는 사람들은 회복이 빠르고

경체의 혼란 와중에 한몫 단단이 챙기기도 한다

 

요즘 한국 경제는 대다수 신문이나 네이버 다음의 인터넷 기사를 보면

낼 모레 망할 듯 하다

 

나는 죽었다 복창하고 사는 사람이라 그런 소식에 무심하다

다만 거의 개인 부도 수준에서 사는지라

영화 보는 거 외에 문화비는 없고

작년 재작년에 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 놔서

손가락을 떠나 머리카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편이다

 

몇 년 전 12월 달은 여러 송년회에 다니느라 바뻤다

올해는 방콕 여행중이다

12월에 송년회 두 번 댕겨왔다

캬캬캬

 

내년엔 거의 모든 회식을 관두고

감자 흉년기에 아일랜드 우크라이나 사람들처럼

살려 한다

 

등소평은 양자강 따라 배를 타고 떠날 적에

무르팍에 올려 놓고 키워 주신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았고

사마광은 산시 창안으로 떠날 때

개혁을 추진하는 신종 임금을 아마 막차로 본 듯하다

 

인생은 어느날 확 피었다가 열흘 후 팍 저버리는

사쿠라의 시기가 있고

피는 듯 마는 듯

사시사철 푸른 이파리로 지내는 시기도 있다

 

몇 년 후엔 몰라도

지금은 그 어디에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영화 속의 김혜수처럼 간절하게 내가 바라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있어야

IMF가 왔는지 좀 더 잘 알 수 있다

 

귀한 인연으로 지구촌을 밟았는데

국부론이나 자본론은 좀 읽어봐야 할 것 같고

그 외에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다

 

프랑스 콜베르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아프리카 노예를 북남미에 끌고 가서

생긴 이득을 어떤 사람들이 꿀걱했는지

1997년 당시 아엠에프 외국인 협상팀들이 각각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경제관을 가졌는지 좀 알고 싶다

 

그냥 궁금해서 그렇다

내년엔 그 어떤 술자리도

개처럼 끌려가서 처묵처묵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먹고 사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길거리 비루먹은 똥개로 사는 내 처지가 즐겁다

 

영화 속에서 자코메티가 말했다

불행을 즐기면서 살아라

끊임없이 극단의 불행 속에서 살아라~~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드 워  (0) 2019.02.19
저니스 엔드  (0) 2018.12.05
악녀 김옥빈  (0) 2017.06.19
황금시대 샤오홍  (0) 2014.10.26
하정우 더 테러 라이브  (0) 2013.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