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북송 6

guem56 2018. 12. 31. 19:20

창강 김택영 선생은 나라가 망하니 중국으로 망명했다

청나라 관리로서 조선에 나왔다가 청일전쟁(갑오전쟁)이후 중국에 가서

사업가로 성공한 장졘(張謇)의 도움을 받아 많은 책을 저술했다

 

장졘 사후 이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창강 선생의 유택은

상하이 북서쪽 난퉁의 양쯔강이 바라보이는 낭산에 있다

 

여한십가문초는 고려와 조선의 문장가 10인의 글을 추려서

창강선생이 편집한 책인데 여기 서문을 량치차오(양계초)가 썼다

 

(양계초)는 이 책(여한십가문초)을 읽고

그 나라(조선 한국)에 진실로 일찍이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고

감탄하였다

 

위 구절은 양계초가 쓴 서문의 일부다

 

양계초는 그 일생이 한에 점철된 사람이다

천재로 소문이 나서 일찍이 청나라 조정에 벼슬을 살았으나

위안스카이(원세개)의 뒤통수치기로 무술정변에서 실패를 보고 역적으로 몰려

일본으로 도주하여 목숨을 부지했다

 

홍콩과 마카오 서쪽에 장먼시가 있고 여기 신후이구가 속한다

신후이 남쪽 해안가를 애산 또는 애문이라 한다

 

1270년 무렵

고려의 삼별초는 진도를 거쳐 제주도까지 왔으나 몽골군과 고려군에게 쫓겨

거의 전멸지경에 놓였다

이들 중 일부가 오끼나와로 떠나 오늘날 오끼나와엔 그 흔적을 알리는 기와파편이 남아있다

 

1200년은 주자학의 주희가 남송에서 죽은 해다

13세기 들어 1234년 북경을 중심으로 세를 떨치던 금나라가 졸지에 몽골에게 망해 버리고

몽골군은 남하하여 남송과 지리한 장기전에 들었다

 

동쪽 고려를 복속시킨 원나라 주력군은 항저우를 함락시켰고

남송 왕조는 홍콩 근처까지 밀려나 배들을 연합하여 해상생활을 하면서 까지 완강하게 버텼으나

1280여년 전후 남송 소제가 만고충신 육수부의 품에 안겨 바다로 뛰어들어 운명하면서

막을 내렸다

 

남송의 마지막 전투와 멸망 장면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애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양계초의 고향이다

 

이승만 보다 두 살 어린 양계초는 어린 시절

조국 중국이 나날이 서양세력에게 힘을 못쓰고 쇠약해가고 중앙 정부인 청나라는

부패가 만연한지라 애산에서 남송 멸망 과정을 되새기며 애국심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북경으로 간 양계초는 노회한 서태후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상식이 통하는 광서제에게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 기회를 주고자 무술년 스승 캉유웨이와 혁명을 꿈꾸었으나

실패하였다

 

나중에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중화민국 시대가 오자 양계초는

후학지도와 저술에 힘썼다

 

왜 중국이 19세기 세계가 비웃는 종이호랑이가 되었는가를 규명하기 위해

이홍장의 전기를 펴냈고

 

중국 역사에서 어떤 새로운 생동의 기운이 있었던 가를 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그의 눈이 번쩍한 곳이 바로 북송이고 그 가운데 표적이 왕안석이 신법 개혁이었다

 

일언이폐지하면 양계초는 왕안석을 매우 위대한 인물로 보았고

이 왕안석의 개혁이 결국 실패한 일에 대해 애석해 하였다

그래서 북송시대를 깊이 살폈고 왕안석 전을 펴냈다

 

우리가 개혁군주라 일컫는 18세기 후반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정조는

애민과 부국강병에 역시 목이 말랐다

정조는 그래서 그 자신 아주 정밀하게 오랫동안 북송시대

 

사마광 왕안석 소식 등이 살던 시대를 주목했고

송나라 역사 문학에 대해 수많은 글을 직접 짓고

그 당시 북송 정치계와 문단등에서 주고 받은 논변과 시문을

밤을 새워 읽고 주석을 달았다

 

그러하다

요즘같이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누가 북송시대 글을 읽으랴 마는 양계초의

왕안석전과 이홍장 전은 읽어볼 만하다

 

이홍장 전에는 청나라 수군과 육군이 일본군에게 몰려 패배하는 뼈아픈 기록이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일본에게 머리를 숙였고

조선엔 일본군이 진주해서 동학교도는 거의 참살을 당하고

조선황후는 시해되었으며

조선은 러시아와 일본의 고래싸움에 다시 명줄을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긴긴 겨울밤 무얼 하고 지내나

틈 나면 사마광 왕안석 소씨 삼부자 그리고

소식 소철의 스승 구양수 더하여 정명도 정이천 정주학의 두 사람 등등

북송시대를 살펴볼 필요는 꽤 있다

 

카페 < 무식이 벼슬>에서

오늘도 인터넷 여기저기를 베끼며

비설 적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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