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북송 13

guem56 2019. 1. 8. 16:28

중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구양수의 3다를 배웠다

 

글을 잘 지으려면 첫째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둘째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많이 글을 지어보라는 이야기다

 

구양수는 방대한 당나라 역사를 정리한 신당서 그리고

당나라가 망하고 북송이 건국될 때 까지

900~960년대의 오대사를 쓴 역사가이다

 

유능한 정치가였으며 바른 말을 잘해서 좌천을 밥먹듯이 당했고

시 사 부 문장을 골고루 잘해서 문단의 영수요

일대종사로 불렸다

 

1057년 구양수는 한림학사로 과거시험 고시관이었다

이때 소동파 형제를 만났으며 평생 스승과 제자로 지냈다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역시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인 증공(曾鞏)이 원래 구양수에게

학문을 지도받은 제자였는데

소식 형제와 같이 시험을 봤다

 

여러 고시생들의 답안지 채점을 하던 구양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엄청난 내공의 답지를 본 것이다

이게 장원이다 ...

그 순간 구양수의 머릿속에....증공이 떠올랐다

 

이정도 수준의 답은 내가 키운 증공 뿐이 쓸 수 없다 아...그런데

증공을 수석으로 맹글면 말많은 카이펑 문단에서

자기 제자를 1등 주었다고 수군댈테니...

그래서 3등인가로 했는데

바로 그 답안지는 소동파의 답지였다고 한다

 

구양수는 서너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종이와 먹을 살 돈이 없는 지경인데 어머니 정씨는

풀을 베어낸 마당에 글씨를 쓰게 했다한다

 

20대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선 구양수는

여러 외직을 떠돌다가 중앙관서에서 부재상인

참지정사까지 올랐다

그가 남경의 서북쪽의 안후이성 추저우에서 벼슬을 할 때

추저우 낭야산에서 술을 마시며 지은 글이 유명한 취옹정기다

 

취옹정기를 지을 때

추저우(滁州)는 동쪽에 아무개 산이 있고 서쪽엔 무슨 산이 있고

남쪽엔 또 무슨 산이....

이런 식으로 문장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環滁皆山也(환저개산야)

추저우(저주滁州)를 둘러싼 건 다 산이다

이렇게 다섯 글자로 간결하게 압축했다

 

당나라에 한유와 유종원이

내용은 없이 겉이 화려한 변려체에 반대하여

고문운동을 일으켰다고 하거니와

북송의 구양수는 한유 유종원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사마광 왕안석 소동파가 정치행로는 다른 점이 있었으나

장중하면서 실질적인 고문을 짓는 편에는 같이 섰다

조선조에서도 늘 문체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이런 와중에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의 글은 널리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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