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북송 15

guem56 2019. 1. 10. 17:42

중국 강서성은 남한 면적의 1.5배가 넘고

인구가 오천만 어름이다

 

강서성 북녘

양쯔강에 접한 도시가 주장(구강 九江)이다

 

주장시는 지급시로서 강원도 보다 더 넓은

2만제곱키로이며 인구 5백여만이다

 

이 주장시에 수많은 철학자 문인이며

정치가들이 거쳐갔다

 

주장시 관할 동쪽에 팽택현이 있으니

여기가 바로 도연명이 살면서 많은 작품을 남긴 곳이다

 

양쯔강 바로 연안에 심양구가 있는데

여기서 당나라 백거이 선생이 그 유명한 비파행을 지었다

 

심양구 아래 염계구가 있다

염계에 주돈이가 살면서

이름을 따서 호를 염계라 하였다

고문진보에 나오는 (애련설)의 지은이다

 

주돈이는 사마광 보다 두어살 위이며

주돈이의 경학이론을 정명도 정이천 형제가 발전시켰고

이 흐름이 남송 주희에게 이어졌다

 

이런 까닭인지 조선조 송시열이나 김창협 김창흡등은

소동파 시문을 별로 좋게 여기질 않았다

소동파가 카이펑 살던 시절에

정명도 형제와 별로 사이가 안좋았기 때문이다

 

염계구 아래

현급시에 해당하는 여산시가 있고

여기에 풍광을 자랑하는 여산풍경구가 있다

 

이태백이 비류직하삼천척을 읊었으며

백낙천이 여기다 초당을 지었고

소동파가 여산진면목이란 시구를 남겼다

 

20세기엔 국민당의 장개석이 여산을 몹시 좋아했고

공산당이 본토를 차지했을 땐

모택동이 여산을 많이 찾았으니

오늘날 여산엔 모택동이 쓴 글씨가 바위에 붉은 색으로 새겨져 있다

 

구강시의 맨 서쪽에

슈이수(修水 수수)현이 있다

여기가 북송 황정견(1045~1105)의 고향이다

 

12세기 송나라 시단엔 황정견의 시풍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리하여 황정견의 시파를 강서파라 부른다

 

강서성엔 큰 호수가 있으니 포양호다

여기서 주원장이 군벌 진우량의 대군을 물리쳤는데

이 싸움이 명나라 건국의 큰 전기가 되었다

 

포양호를 마주한 도시 남창에 유명한 등왕각이 있다

여기서 왕발이 등왕각서를 지었다

 

황산곡(산곡은 호)이 태어난 수수현에서

청강이 흐르는데 이 청강이 수백리 흘러 포양호로 들어간다

 

오늘날 청강 근처엔 청강향이란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물줄기가 구불구불하여

영월 동강이나 홍천 노일강의 굽이를 닮았다

 

열일곱 소년 황정견이 아마 이 마을에서

자랐는지 여기를 지나쳤는지

청강인이란 시 한 수를 남겨 1000년 세월 전한다

 

시를 보면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

황산곡의 주특기인 선배들의 시구를 절묘하게

툭툭 잘라서 배치를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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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인

 

해오라비 갈대 숲에서 푸득이는 가을이라

팔십 어부는 만사에 시름을 놓고

 

이른 새벽 연을 따서 국을 맹글고

해저물 녘 그물 걷으로 노를 젓누나

 

아해들은 물고기 잡이 지칠 줄 모르고

흰머리 아낙 또한 마냥 즐겁네

온 식솔들이 술 한 잔 하고 갈대가리 아래 잠들새

차운 모래톱 물결에 배 흔들거리네

 

淸江引

江鷗搖蕩荻花秋 八十漁翁百不憂

淸曉採蓮來蕩漿 夕陽收网更橫舟

君兒學漁亦不惡 老妻白頭同此樂

全家醉着篷底眠 舟在寒沙夜潮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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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두보의 시

강촌(江村)의 이미지가 전면에 드러나며

첫구절엔 백낙천 비파행의 일구(풍엽적화추슬슬)

세 글자 (적화추)로 압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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