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man

미스터 소철

guem56 2020. 6. 13. 23:57

미스터 소철(蘇轍 1039~1112)

 

명나라 학자 마오쿤(茅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

소철에 대한 평을 남겼다

 

(글의 날카로운 맛은 부친 소순에 못미치고

호방한 기세는 형 소식에 한 수 뒤지나

글이 담박함은 서한(西漢)이래 특별한 경지다)

 

소철이 형 소식이 그렇게 아끼던 제자요

시문화답자인 황산곡에게 보낸 편지

(답황정견서 答黃庭堅書)가 있다

 

그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제가 못나서 황선생과 교유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형님과 주고 받은 시문을 보고 꼭 뵙고 싶었으나 차일 피일

편지 한통 못 보내고 지내던 중에 먼저 서찰을 주시니,,,,)

 

겸손하고 마음 따듯한 소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편지다

 

황산곡이 하도 그림같은 시를 잘 써서

송 금 원 명 청대의

화가들이 존경하였거니와

 

강서시파의 장문인으로 모시는 바이니

황산곡 사() 한 편 보고 가자스라

 

소충정(訴衷情)

 

一波才動萬波水 簑笠一鉤絲

金鱗正在深處 千尺也須垂

 

呑又吐 信還疑 上鉤遲

水寒江靜 萬目靑山 載月明歸

 

(일파재동만파수 사립일구사

금린정재심처 천척야수수

 

탄우토 신환의 상구지

수한강정 만목청산 재월명귀)

 

물결 한 번 일렁이니

파랑이 만겹일새

 

삿갓에 도롱이 걸치고

외줄 낚시 드리우니

 

쏘가리는 깊은 물속에 이시매

길고 긴 줄을 드리워야 하나니

 

바늘을 삼켰는가 뱉었는가

물었는가 튀었는가

낚시 올리기 한없이 더디구나

 

물은 차고 강은 고요한데

사방이 산이구나

밝은 달빛아래 집으로 가자스라

 

이노래는 1099년 황산곡 나이 쉰 다섯에

지금의 충칭시 서남부 이빈에서 지었다

 

이빈은 진사강과 민강이 만나

양자강을 이루는 합수처이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살기좋은 도시이나

그 당시는 궁벽한 벽지였다

 

왜 황산곡은 여기에 갔을까

소식 소철 형제와 가깝게 지낸 죄로 유배되었다

 

1097

사마광이 죽은 지 어언 11년인데

철종황제 아래 집권 신법개혁파들은

 

죽은 사마광을 격하하고 소식 소철

그리고 소씨 형제와 관련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멀리 유배지로 보냈다

 

소식은 하이난 섬으로

소철은 뢰주(雷州 레이저우)로 갔다

그 해 유월 두 형제는 뢰주에 도착했고

 

엿새를 함께 지낸 후

소동파는 배를 타고 하이난 섬으로 떠났다

 

둘 다 이것이 살아서

마지막 이별인 걸 꿈에도 몰랐다

 

180111월 하순

정약전과 정약용은

전라도 나주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형은 서쪽 흑산도로

동생은 남쪽 강진으로 유배가면서 헤어진다

 

둘 다 이것이 살아서

마지막 이별인줄 꿈에도 몰랐다

 

1919년 이 땅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그 해

중국 쓰촨성 광안 어느 산골에서

15세 소년이 산길 20리를 걸어서 집을 나섰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충칭으로 가는 배를 타러 가는

소년을 배웅했다

 

이것이 살아서 마지막 이별이었다

 

소년은 프랑스와 러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등소평이다

 

 

'사람 m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게너  (0) 2021.07.19
백거이 비파행  (0) 2021.07.09
미스터 증공  (0) 2020.06.12
제백석 12방인  (0) 2018.05.25
북송 휘종 기암괴석의 원림  (0)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