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장대천 (7)
남장북부(南張北溥)
장대천이 시서화로 이름이 높아지자
남장북부
남오북부
남장북제란 말이 나왔다
남장북제는
남에선 장대천 북에선 제백석(齊白石)이란 뜻이다
남장북제를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남장북부를 알아보자스라...
푸루(溥儒 부유 Pu Ru 1896~1963)는
아편전쟁 당시 황제였던 도광제의 증손이다
그리하여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와는
증조할아버지가 같으므로
6촌사이다
자를 심여라 하여 부심여(溥心畬)선생이라 칭한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란 소릴 들었는데
다섯 살 무렵
서태후 무릎위에 놀다가
서태후가 글자를 적으면
잘 읽어서 서태후가 크게 기뻐하여
보물을 상으로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스스로 자서전 같은 글에 적기를
7세에 오언시를 짓고
10세에 칠언시
11세에 문장을 지었다 한다
왕희지와 미불의 필법을 익히고
풍부한 가장도서를 두루 섭렵하여
시 서 화 삼절의 경지에 갔다
그는 문학 예술상의 단계를
경학(經學)이 첫째며 시가 둘이고
서법은 세 번째 마지막에 그림을 들었다
하여 단아하고 격조높은 문인화풍의
산수화를 잘 그렸다
1930년대
쑤저우 상하이 베이징을 드나들면서
장대천과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서로
시서화를 논하고
2인공동으로 작품을
그린 적이 있으며
많은 시서화를
화답하였다
두 사람은 1945년 무렵에도 1년 넘게
베이징에 머물면서 우정을 쌓았고
1950대 이후엔
부선생이 타이완에 정착했는데
당시 남미 브라질에 머물던 장대천이
수시로 홍콩 일본 타이완등지를 여행하면서
숱한 모임을 가졌다
1934년 두 사람은 공동으로
송하고사(松下高士)도란 그림을 남겼다
195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장대천의 전시회에 참가한
부선생은 이런 시를 남겼다
滔滔四海風塵日
宇宙難容一大千
却似少陵天寶後
吟詩空憶李淸蓮
당시 장대천은 브라질에 머물면서
전세계를 주유중이었다
이 시의 2구는
넓은 우주가 장대천에겐 좁구나
이런 의미가 있고
3구는 당나라 현종
안록산 난 시절의 두보를 말하며
4구는
시선 이태백(이청련)을 말한다
장대천이 아마도 두보인 듯 하고
부심여가 태백인듯도 하고
그 반대인듯도 하고
두보 태백이 모두
장대천을 의미하기도 하는지....
시란 해석이 껄끄럽기도 하거니와
읽는 이가 아는게 짧아서 이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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